아파트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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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방 뒷 유리창으로 내려다보이는 2동5호실에는 극성스럽도록 부지런한 부부가 살고 있다.
아침 일찍 잠을 깨는 우리 집 대통령(영준이)을 위해서 늘 이 창문을 열고는 「아파트」옆을 지나가는 자동차나 김이 무럭무럭 나는 여물을 먹고있는 말을 보여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 5호실 부부는 집 앞을 쓸고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의 일이다.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그 부지런한 부부는 집 앞을 다 쓸고 막 쓰레기를 치우는 참이었다. 그때 3층에서 어떤 여자가 연탄재를 들고 나오더니 이 깨끗이 쓸어 놓은 길에다 냅다 던지고 들어간다. 『청소는 한번도 안 하는 것들이 치울 줄은 모르고 어디다 대고 재를 내던지노?…』
쏟아져 나오는 말이 속사포 같다. 그쯤 되면 나라도 욕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 은근히 마음속으로 편을 들며 그대로 내다보고 있는데 방금 그 여자가 또 연탄재를 들고 나오더니 배짱 좋게도 아래로 던지고는 들어가 버린다. 부지런한 부부는 더 참지 못하고 욕을 하며 층계를 올라 쫓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 「아파트」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다. 6층 맨 꼭대기에서 먼지가 풀썩풀썩 나는 가마니를 훌훌 털어놓고도 태연하다. 요즈음은 며칠을 계속해서 굿을 하느라고 꽹과리 치는 소리가 남쪽·북쪽에서 「아파트」전체를 밤새도록 쿵쿵 울리기까지 한다. 「아파트」라는 가장 현대적인 건물 안에 미신 따위를 믿어 굿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 잔재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고 그 무신경한 짓들에는 아연할 뿐이다. 「아파트」처럼 공동생활은 하는 곳에서 위생관리나 공중도덕 등이 없어 질 때는 「아파트」전체가 빈민굴화 하여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같이 명랑하고 즐거운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무신경을 하루빨리 고쳐야 될 것 같다. <대구시 신천아파트내 1동24호 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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