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공약 후퇴 논란 확산 … 대통령, 직접 국민 설득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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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거취 문제가 대선 복지공약 후퇴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논란은 진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있는 사이 그의 측근이 지난 21일 대선 공약(기초노령연금) 후퇴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진 장관이 사의를 표할 것이란 말을 흘리면서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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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초 복지부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대선공약을 수정해 ‘소득 상위 30%’에겐 연금을 주지 않고 나머지 70%에게는 최대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는 방안 발표가 유력했다. 그런데 진 장관의 거취 문제가 돌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후퇴 문제로 국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23일 비상이 걸렸다. 평소 ‘약속 이행’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은 진 장관과 측근의 처신에 대해 언짢아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매주 월요일 주재하던 수석비서관회의도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맡겼다. 박 대통령은 비공개 일정을 소화하면서 대선 복지공약 후퇴 논란 등에 대한 보고도 받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진 장관이 대선 공약 후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정부가 설명할 여지가 없어지고 논란만 키우게 됐다”며 “논란을 수습해야 할 주무 장관이 자기의 입장만 생각하다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약 후퇴가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하고 다녀야 할 장관이 대통령께 보고도 없이 언론에 사퇴설을 흘리고 공약이 발표도 되기 전에 사퇴하겠다니 말이 되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김기춘 실장도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진 장관과 측근들의 행태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논란의 당사자가 진 장관이란 점에서 청와대의 당혹스러움은 더욱 컸다.

 박 대통령과 진 장관 사이엔 굴곡이 있었다. 진 장관은 2004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로 재임하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핵심 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진 장관은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맞붙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 ‘현역 의원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면서 당내 박근혜계 인사들과 불협화음을 냈고 결국 ‘탈박(脫朴)’ 했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선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총괄했다. 당선 후에는 핵심 요직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입각한 인사는 그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둘뿐일 정도로 박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웠다. ‘탈박 인사’로서 박근혜계 핵심들보다 중용된 이는 진 장관이 유일하다. 당초 청와대는 복지부가 발표할 기초노령연금안이 행복연금추진위원회라는 사회적 기구의 논의까지 거친 안이라 국민에게 공약 수정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공약의 후퇴 내지는 파기가 아니라 재정 상황에 맞춰 최대한 공약의 취지를 살리려는 ‘수정안’이란 게 청와대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진 장관으로 인해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촉발되자 청와대는 ‘제2의 거위털’ 논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지난 8월 세제개편안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거위털을 살짝 뽑듯이 국민이 고통을 모르게 마련한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가 역풍을 부른 적이 있다. 마치 그때처럼 진 장관의 사의 표명 이유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양상이 비슷하다는 점이 청와대의 고민이다.

 기초노령연금 문제를 필두로 해서 앞으로 4대 중증질환 진료 보장,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등 당초 공약했던 내용보다 조정이 예상되는 복지 정책(그래픽 참조)들이 한둘이 아닌 청와대로선 진 장관 거취 논란의 진화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복지부가 수정안을 발표할 26일 국무회의에서 직접 공약 이행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국민에게 이해와 설명을 구할 예정이다. 26일 국무회의에선 내년도 예산안이 상정된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원래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재할 예정이던 국무회의를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기로 했다”며 “그 자리에서 기초노령연금과 4대 중증질환 진료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선 유감 표명 가능성도 거론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 문제에 직접 나서야 할지 고민이 있었지만 정면 돌파해 나가기로 했다”며 “정부가 조만간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추가적으로 이해를 구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용호·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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