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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종교의 십자로서 만난 일요일|김찬삼 여행기<서사모아 군도서 제1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높이 뜬 여객기의 창으로 파란 숲으로 뒤덮인「사모아」군도가 내려다보일 때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섬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것은 쉬이 권태를 느끼지만 자연적인 것은 매양 새로운 기쁨을 주는 때문인지 이렇게 지치도록 쏘다니건만 세계의 자연은 오직 영탄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닌가. 자연미에서 어떤 미인보다도 아름다운 것을 느끼니 나는 아마도 자연의「돈환」인가 보다. 말하자면 자연의 처녀성이랄까 정수랄까. 세계의 자연의 「에슨스」를 살라먹는 이색적인 「돈환」인지도 모른다.
공항에서는 입국절차가 간단하였으며 한국인이라고 더욱 반겨 주었다. 서울인「아피아」 까지는 38㎞나 되는 해안도로를 달려야하는데 바닷가의 풍경은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펼쳐진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마을의 고색감도는 교회에서는 그윽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종소리를 들으니 천국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사모아」는 낯선 나라 사람의 넋을 빼앗는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넋을 판「파우스트」처럼 나는 지금 이 자연에 나의 넋을 온통 판 것이다. 감정이입이 아닌 이「자연이입」은 이처럼 사람을 타락의 세계로 이끄는 것일까.
이 나라도「통가」국처럼 일찌기 기독교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인지 생활화한 듯이 보인다. 길가나 혹은 교회의 뜰에는 포교당시의 희생자며 공로자들의 기념패들이 많이 서 있다. 식인종의 고장이던 이 섬 특히 식인 풍습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800년대부터 신부며 전도사들이 용감하게 야만인 속에 뛰어 들어 포교하다가 희생되었던 것이다.
서울「아피아」에 이르니 얼른 눈에 띄는 것은 우거진 열대림 속에 여러 교파들의 큰 교회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띄엄띄엄 서 있는, 정부 청사는 이 교회에 비해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첫 인상이 이 나라 서울은 종교도시다웠다. 한 때 식인 풍습이 있었건만 그런 것은 이젠 먼 옛날 이야기요, 어질게 보이는 선남 선녀들이 화사한 웃음을 띠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한결같이 평화스러운 표정들이며 찌푸린 사람의 얼굴은 보려야 볼 수 없다.
이 나라의 교회는「로마·가톨릭」·감리교·「런던」전도협회·「모르몬」교 들인데, 「통가」왕국과 거의 비슷하며, 역시 이 나라도 신앙의 선의의 경쟁이 벌어져 특히「모르몬」교회는 재정이 많은지 돈을 많이 써 가면서 선교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옛날과는 달리 종교의 판도가 거의 나뉘어 있어 이젠 새로운 포교지역이 많지 않겠지만 물질적으로 선교한다는 것은 종교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지 경쟁해야 생존하게 된 이 현대의 생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신앙이 유물화 하다가는 종교 자체마저 잃어버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종교를 포교하는 지배자는 어떻든「사모아」사람은 종교의 순수성을 지니는 듯이 보였다. 이 나라는 「폴리네시아」여러 섬들이 이루는 삼각형지대의 중심이며 인종들도 여기서 퍼져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사모아」군도를「하와이키」(성지란 뜻)로 부른다.
이「폴리네시아」인종은 본디 몽고나 「코카서스」사람으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2천5백 년 전「아시아」대륙에서「커누」를 타고 해류와 섬을 따라 전전하여 동쪽으로 와서 오늘의「사모아」군도에 이르렀고, 여기 기원전후에 북쪽인「하와이」섬, 동쪽인「이스터」섬, 남쪽인「뉴질랜드」로 퍼져 나갔던 것이라고 한다.
이 서「사모아」공화국이 이루어지기까지는 파란이 많았다.
1722년「네델란드」의 이른바 삼선 탐험대들이 발견하였고 1768년엔「프랑스」사람이 여기 왔으며, 1830년엔 빈약하나마 통일된「사모아」왕국을 이루었었다. 그 뒤 서울 「아피아」에 영국·미국·독일령 사관들이 설치되어 분할분쟁에서 세 나라의 공동관리로 타협을 지어 오늘날의 서「사모아」는 독일 령, 동「사모아」는 미국 령이 되었고 영국은 독일에서 「솔로몬」「군도」,「아프리카」의 독일영토와 교환조건으로 떠났었다. 그러다가 세계1차 대전 뒤엔 또 묘하게도 「뉴질랜드」의 위임, 신탁통치를 거쳤으며 1961년에 비로소 독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처럼 동「사모아」와 분할된 체 독립되었으니 이들도 민족적인 비극을 지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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