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비리 한수원 … 퀵서비스로 뇌물 배달시킨 직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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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로 배달, KTX역사에서 직접 수수, 주차장에서 차 트렁크에 실어….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의 다양한 뇌물 수수 행태가 드러났다. 한수원이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한표(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한수원의 자체 감사보고서를 통해서다. 보고서는 지난해 하반기에 한수원이 적발한 직원 비리 내용을 담고 있다.

 JTBC가 17일 단독 입수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수원 직원들의 비리와 기강해이 실태는 심각했다.

 올해 초까지 한수원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본부에 파견돼 건설공사 품질보증 업무를 한 A씨는 2011년 7월에 16일간 정기휴가를 신청하면서 부모님 회갑이라고 거짓 보고를 올려 4일짜리 경조휴가를 추가 신청했다. 이 덕분에 A씨는 20일간 한국을 다녀올 수 있었다.

 ‘사기 휴가’ 수법을 알게 된 A씨는 2012년 4월 형 결혼을 이유로 휴가를 다녀왔다. 다음달인 5월엔 부친 칠순을 이유로 다시 경조휴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A씨는 이미 2010년 부친의 칠순을 이유로 경조휴가뿐 아니라 경조금까지 받아간 사실이 발각돼 감봉의 징계를 받게 됐다.

 감사보고서엔 97명이 기소된 원전 비리 관련자들의 뇌물 수수 행태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울진원자력본부에서 근무하는 B씨는 하청업체의 편의를 봐주고 업체로부터 500만원을 퀵서비스를 통해 받았다.

 고리원자력본부의 C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KTX광명역에서 현금 900만원을 받았다.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D씨는 부산의 한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둔 뒤 현금 5000만원을 트렁크에 싣게 하는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법으로 뇌물을 챙겼다.

 한수원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된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은 지난해 3월 대만으로 국외출장을 간 뒤 출장내역을 공시하지 않아 감사팀의 지적을 받았다. 김균섭 전 사장도 지난해 9월 아랍에미리트 출장 기록을 공시하지 않아 감사팀에 적발됐다.

 감사팀은 한수원 전 사장들이 외유성 출장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출장내역 공시를 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생색내기용’ 간부 전원 사퇴 번복=한수원은 원전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이 터지자 지난 6월 13일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1급 이상 간부 197명 전원의 자진 사표를 발표했다. 한수원은 자정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JTBC 취재 결과 지금까지 사표가 수리된 1급 이상 간부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사표가 수리된 사람은 없다”면서도 “새로운 사장이 부임해 인사를 새로 하면 사표를 수리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따로 사표를 수리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다.

 김한표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 위원은 “한수원은 원전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수의계약 근절과 납품업체와의 관계 단절 등을 위한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동회·유미혜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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