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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운동」이 돼 버린 산악운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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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등산을 흔히 산악운동이라고 한다. 그 뜻 속에는 산악이 가지는 「이미지」를 습득하려는 수련자로서의 자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수련이 산악운동의 전부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점잖음을 배우고 익히는 운동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산악운동은 산악운동화 되어가고 있다. 마치 산악이 폭행·강도·강간 등 온갖 파렴치 범죄 내지 흉악 범죄의 소굴로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민도의의 타락에서 오는 현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요즘은 주말등산이 싫어졌다.
황금보다 귀한 것이 「메커니즘」에 시달린 현대 시민의 주말이다. 이 아까운 주말을 아귀다툼의 지새움에서 벗어나 자연에 파묻혀 보는 것은 내일의 전진을 위한 「에너지」의 확보이다. 그런데 주말등산이 싫어졌다니 내게 있었던 생활의 반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30여년 등산을 즐겨온 내겐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지난 봄 북한산에서 몇 차례 당하고 보았던 부도덕한 꼬락서니와 가슴 섬뜩했던 사건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날 나는 조용한 주말을 만끽하기 위해 단독 등산을 마음먹고 백운대 「코스」의 호젓한 길목을 가고 있었다.
내 앞에 몇 명 K고교학생이 제복차림으로 즐겁게 걸어가고 있었고 뒤에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3명의 일행이 오고 있었다. 이때 느닷없이 나무 위에서 휘파람을 신호로 대여섯명의 깡패가 손에 손도끼를 들고 뛰어 내렸다. K고교생과 여대생을 위협하고는 시계며 등산장비를 빼앗곤 몇대씩 갈겼다. 여대생에게는 차마 눈뜨고 못 볼 희롱을 걸어왔다. 시중 분노에 찬 얼굴로 지켜보는 내 코앞에는 날이 시퍼런 도끼 날이 위협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그 중 두목으로 보이는 놈을 불러 빼앗은 물건을 내놓으라면서 내 신분(산악단체의 간부)을 밝혔다. 그러고 있는데 산악회의 젊은 간부들 여럿이 올라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뛰어와 그놈들을 붙잡아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이런 일은 약과다. 살인·강간·집단폭행·강도행위 등의 범죄와 마치 온산을 혼자 사버린 듯이 떠드는 사이비 등산꾼, 「스피커」와 악기소리, 「트랜지스터」소리,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쓰레기와 밥찌꺼기 산은 온통 범죄와 소란과 식당의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다. 이제 등산꾼(사이비들)을 이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산악「퍼트롤」제가 생기든가, 주말에 만이라도 경찰관을 대거 파견 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정규 산악단체에다가 예산과 단속권을 주어 이를 다스리게 해야한다. 끝도 없이 떨어져 가는 시민도의의 전시장 산악에다 말이다. <배석규·전 한국산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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