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거미의 내 집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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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반포면 들녘, 2013. 8]

거미가 출사돌기에서 사출해 친 것이 거미줄입니다. 거미집이라고도 합니다. 거미가 알을 낳아 놓거나, 먹이를 잡으려고 얽은 그물을 말합니다. 거미줄은 잉글랜드 서식스주의 백악기 초기에서 발견된 것을 토대로 적어도 1억4100만 년 동안 존재해온 것으로 유추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기다림에 익숙한 듯합니다. 거미는 높은 곳에 올라가 바람을 기다립니다. 배 속에서 뽑은 첫 줄을 바람에 날립니다. 줄 끝자락이 어딘가에 붙으면 거미는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강아지풀에 위태롭게 지어진 사진 속 거미집이 안쓰럽게 보입니다. 첫 줄 끝자락을 바람이 데려간 곳이 연약하기만 한 강아지풀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미는 바람이 정해준 터가 궂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반나절 걸려 만든 터전이 한순간에 뭉그러지면 거미는 또 다른 바람을 기다릴 뿐입니다.

글=장혁진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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