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미디어 세상] 비만증 청와대 홍보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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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정치인 팬 클럽인 노사모,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정치결사체가 된 인터넷, 국민이 직접 참여해 정당 대선후보를 뽑은 국민경선제...

노무현 후보는 한국 정치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盧후보의 당선은 '낡은 청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민심 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주말드라마'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드라마틱했던 국민 경선제로 민주당 대선 후보를 거머쥔 盧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이는 시대와 지지자들의 기대에 역행하는 처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새 정부와 청와대도 작은 정부.탈규제라는 세계 정치흐름과 달리 몸집을 계속 불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특히 청와대 공보수석실이 그러하다. 이는 盧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DJ 정부의 공보수석실이 1수석.6비서관 체제였던 데 비해 새 정부의 홍보수석실은 거의 2배나 되는 1수석.1대변인.9비서관 체제로 대폭 커졌다.

하기야 DJ정부가 출범 초기 가장 후회한 조치가 공보처의 폐지였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말한 적이 있다. DJ정부는 1년 후 시민단체.언론.야당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정홍보처를 신설했다. 새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려고 하는지, 다른 꿍꿍이 속이 있는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다.

원래 홍보(PR)라는 개념은 공중과의 관계를 좋게 만든다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치적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적으로 포장.가공하는 작업으로 이해한다.

미국에서 이같은 홍보전문가들을 '스핀 닥터'(spin doctor)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새 정권은 북핵 문제, 국민 통합 등 국내외적으로 민감한 현안들을 떠안고 출발하기 때문에 청와대 홍보팀의 역할과 임무가 중요하리라고 본다.

그러나 정작 우려되는 부분은 청와대가 홍보수석실을 통해 언론 개혁에 개입할 암시를 주는 대목이다. 신계륜 당선자 인사특보도 홍보수석의 인선 기준을 "언론 개혁의 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전략적인 홍보와 마케팅 전문가, 방송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으로 밝힌 바 있다. 새 정부 홍보 수석에 부여된 또 하나의 역할은 언론개혁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근 노무현 당선자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의 가판신문 구독을 금지할 생각"이라고 말하자, 이해성 홍보수석은 "앞으로 논의를 거쳐 (언론 개혁의)구체적인 안을 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노무현 새 대통령은 대선 후보와 당선자 시절 "정치는 정치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정도를 가야 한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정치 권력이 언론 개혁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또 '최고의 정치가 최선의 홍보'라는 것은 홍보의 ABC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뭔가 일을 벌여 비효율과 파행을 일으키기가 십상이라는 역사적인 교훈을 얻지 않았던가.

무한 국제경쟁시대에 국내 홍보의 직제와 인원은 없애거나 줄이고, 해외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따라서 새 정부의 홍보 직제와 정책에 고운 시선을 던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새 시대에 걸맞은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진실이 스스로 말하게 하라." 국가 홍보의 바람직한 기본 철학을 시사하는 오래된 서양의 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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