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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어진 대선 공약 … 들썩이는 영남권 … 해법 없는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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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부권신공항범시·도민추진위, 대구상공회의소,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경북정책자문위 등이 공동 주최한 ‘남부권 신공항 대토론회’가 12일 대구시 북구 엑스코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경제계, 학계, 시민단체 등을 대표하는 700여 명의 참석자가 30개 조로 나뉘어 신공항 유치방안에 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가 결국 세종시로 간다. 새누리당과 안전행정부가 12일 국회에서 당정협의를 하고 내린 결론이다. 국회 안전행정위 소속 새누리당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래부와 해수부를 조속한 시일 내에 세종시로 이전한다는 원칙에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소식이 전해지자 새누리당 부산지역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하태경(초선·부산 해운대-기장을)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당사자인 부산시민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정부의 일방적이고 내려 먹이기식 입장이 발표됐다”며 “부산시민들은 박근혜정부가 부산을 해양수도로 삼겠다는 걸 철회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시민들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부산지역이 이처럼 해수부 입지에 민감한 건 대선을 앞둔 지난해 11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해수부 청사를 부산에 두는 방안에 대해 “그런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실제 대선 공약집에도 해수부 부활은 ‘부산’과 ‘수산업’ 부분에 포함됐었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다음 주 추석 연휴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경남(PK)은 물론 대구·경북(TK)의 민심까지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해수부 청사 문제뿐 아니라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이 약속한 영남권 지역공약 중 상당수가 실행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선 선박금융공사 설립이 백지화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대선 때 새누리당은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육성하겠다며 부산에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정부의 정책금융 개편안에는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공사를 만들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불공정무역으로 제소될 수 있다는 금융위원회의 우려가 청와대에 전달됐고, 청와대는 이를 수용했다.

 금융위는 공사 대신 해양금융종합센터를 만들어 실리는 그대로 살리겠다는 계획이지만 부산 민심은 진정되지 않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 11일 부산을 직접 찾아 ‘부산지역 금융현안 간담회’를 열고 이해를 구했지만 지역 반응은 냉랭했다. 이튿날인 12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 이대로 좋은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한 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장을 비롯한 부산 의원들은 “대통령 공약으로 선박금융공사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너무 쉽게 공약사항을 정리해 버렸다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지역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경북 민심도 심상치 않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예산안에는 이천~문경, 포항~삼척 등 경북지역 7개 철도사업에 대한 내년 사업비 906억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7개 철도사업은 감사원이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까닭에 이미 설계까지 마친 상황에서 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지역에선 “지역 균형발전을 약속한 박근혜정부가 경제성만을 따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정부 시절 영남권 전체를 갈등에 빠지게 했던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아직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년 8월께로 예상되는 입지 선정 때 영남권이 또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시각이다. 국토교통부의 발주로 지난달 29일 한국교통연구원이 ‘영남지역 항공 수요조사’에 착수한 만큼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게 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 등 5개 광역단체의 공식 입장이지만 밑바닥에선 기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12일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범일 대구시장, 새누리당 이철우·주호영 의원, 금융권·노동권·시민단체 관계자 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공항 대토론회’를 열었다.

 갈등 과제가 쌓이고 있지만 청와대는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선박금융공사 문제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지역 SOC 사업에 대해선 “최대한 챙기고 있어 추가로 반영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지역의 요구를 모두 반영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공항 건설과 해수부 이전 문제도 소관 부처를 중심으로 대응할 뿐 일단은 “지켜 보자”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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