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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숙 장관,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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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

일본 후쿠시마 주변 8개 현(縣) 수산물에 대해 한국 정부가 6일 내린 수입 중단 조치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에 따른 위험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국민 건강 보호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둬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정부 안에서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통상·무역 문제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에, 국민 건강 보호라는 명분에 충실하면서도 일본과 외교적 마찰도 피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내세웠다. 첫 번째로 일본 정부가 오염수 유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정보를 받아야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일본산 수산물이 오염되지 않았다’고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로는 일본 정부도 해당 8개 현에 생산 금지 수산물 품목을 지정한 사실을 들었다. 일본이 이곳 수산물의 위해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 입증 절차도 없이 생산 금지 품목을 지정하진 않았을 거란 논리다. 그리고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가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는 점을 들어 ‘방사능의 위해 가능성은 과학적 정설’이라는 논리로 수입을 중단했다.

 그런데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11일 국회에서 이 같은 정부의 논리를 무력화시키는 발언을 했다. “사실 과학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면 현재로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다만 국민 불안감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고, 그런 민감한 걸 정부에서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황주홍 민주당 의원의 “수산물 오염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그동안 정부가 괴담으로 취급했다”는 지적에 대한 대답이었다.

 윤 장관은 ‘과학적’이라는 말이 한·일 관계에서 민감한 용어가 됐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수입 중단 결정 당일 일본 관방장관이 항의와 유감의 표시로 “한국이 과학적 근거에 따라 대응하기 바란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 장관은 “과학적 관점에서 문제없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과학이 아닌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오해할 만한 여지를 만들었다. 또 수입 중단을 발표한 6일은 도쿄가 후보로 나선 2020년 여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둔 시점이어서 한국 정부가 이를 방해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게 됐다.

 서울 여의도에서 나온 윤 장관의 발언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지금도 전 세계 누구나 이 발언을 다시 들을 수 있다. 장관의 외교 활동은 상대국 관료를 마주 보고 있을 때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최선욱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