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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CCTV로 젖소 관리 "좋은 우유 나올 수밖에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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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병운 성보농장 대표가 소의 젖을 짜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꾸준한 관리로 연매출 3억50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방병운 성보농장 대표가 지역 낙농업계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천안 성남면에서 젖소 70여 마리를 키우며 우유생산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연 평균 매출 3억5000여 만원을 기록하며 이웃 농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젖소를 양성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농장 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젖소의 상태를 꼼꼼히 파악하고 있다. 10일 성보농장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천안 도심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동남구 성남면은 산지가 많으나 비교적 낮은 구릉지대인데다 관개시설(농경지에 물을 대고 빼는 시설)이 좋아 농업이 성하다. 벼농사 외에 과수와 원예농업, 낙농업이 활발해 많은 농장이 분포해 있다. 성보농장은 성남면 봉양리 670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 농가와 다를 바 없었지만 직접 들어가보니 임신한 젖소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전광판이 마련돼 있었으며 농장 내 모든 곳을 살필 수 있는 CCTV도 설치돼 있었다.

“건강한 젖소에게 좋은 우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전광판은 임신한 젖소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축산 과학원의 도움으로 농가를 운영하던 초기에 설치했어요. 농장 전체를 수시로 살피기 위해 CCTV도 주변 농가 중에서는 제일 먼저 달아놨죠.” 방 대표는 자신의 농장에 설치된 전광판과 CCTV를 가리키며 이렇게 얘기했다.

그는 지난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낙농업에 뛰어들었다. 주변 농가보다 비교적 시작은 늦었지만 특유의 세심함과 성실함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특히 젖소들을 송아지 때부터 정성껏 키우면서 꼼꼼히 관리하기 때문에 꾸준히 질 좋은 우유를 생산해내고 있다. 현재 그가 생산해내는 우유는 모 대기업에 납품되고 있는 상태다.

“다른 농장에 품질 좋은 젖소가 있다고 해서 그 소를 매입한 적은 없습니다. 송아지 때부터 자식처럼 정성껏 길러서 좋은 젖소를 양성해내죠. 자식처럼 길러진 젖소는 당연히 좋은 우유를 생산해냅니다. 이것이 바로 농장을 잘 운영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죠.”

방 대표가 자신의 농가 축사에서 젖소에게 여물을 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귀농 후 직접 축사 설치 … 송아지 6마리로 시작

그는 원래 천안의 한 공장에서 선반 부품 등을 깎는 일을 했었다. 특유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많은 돈은 아니지만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부족함 없이 월급을 받으면서 살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각박한 사회생활에 지쳐갔다.

“유능한 젊은이들이 입사하면서 제 입지가 작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죠.”

이리저리 타 직종을 알아보던 방 대표는 가까운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천안 농업고등학교 출신이었던 그가 마흔 다섯의 나이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도 그런 그의 생각을 적극 지지했다. 여느 아내라면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귀농에 뛰어들겠다는 남편을 잘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누구보다 그의 성실한 성격을 알기에 단숨에 허락한 것이었다.

“저를 믿고 따라와준다고 하니 농사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저희 어머니께서 홀로 사시면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곳 성남면에 젖소 농장을 꾸리기로 했죠.”

그가 낙농업을 선택한 계기는 그 당시 전국에 우유소비량이 늘면서 낙농업 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성남면 일대는 지리적으로 소를 키우기 적합했으며 주변에 젖소 농가가 많았던 것도 그가 낙농업을 선택한 이유가 됐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듯 했지만 방 대표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논이었던 땅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부터 축사를 직접 설치하는 것까지 모두 혼자 진행했다. 시설 투자비용은 5000여 만원이 들었다. 모아놓은 돈 중 남은 돈 200여 만원으로 송아지 6마리를 분양 받아 키우면서 성장과정을 꼼꼼히 살폈고 틈만 나면 천안농업기술센터에 들러 농사 방법·기술을 배웠다. 전국 곳곳의 유명한 젖소 농장을 견학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농업도 연구와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다른 농가를 방문해서는 축사를 어떤 식으로 지었는지도 유심히 살폈죠. 사는 곳이 편해야 젖소들이 잘 자랄 수 있잖아요.”

어려움 있었지만 철저한 관리로 극복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앉으나 서나 ‘어떻게 하면 젖소들을 잘 관리하고 좋은 우유를 생산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방 대표는 축산 과학원도 방문해 전문가들로부터 여러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한 연구원으로부터 ‘젖소의 번식’에 대한 공동 연구를 제안 받았다. 축산 과학원에서는 농장에 전광판을 설치해 임신한 젖소의 자궁상태, 출산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젖소의 상태를 꼼꼼히 살필 수 있게 되자 좋은 우유도 생산할 수 있었고 입소문이 퍼져 거래처도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었다.

 방 대표가 낙농업으로 한창 승승장구 하던 2002년 정부에서 ‘우유 쿼터제’를 시행했다. 우유 쿼터제는 우유대란으로 수급불안이 야기되면서 도입됐다.

유가공업체가 농가에 납품 받을 수 있는 원유의 양을 정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여러 농가들은 생산해내는 우유를 팔 수 없는 경우가 생겨 많은 불만을 초래했었다.

 방 대표에게도 피해가 있었다. 대기업과 거래를 했지만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성보농장의 납품량을 줄였던 것. 이 때문에 방 대표는 거래처에 납품하는 우유를 제외하고 남은 우유로 치즈, 요구르트 등의 가공 식품을 만드는 ‘유제품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해 청천벽력과 같은 사실을 접했다. 방 대표의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것. 유제품 사업은 잠시 접고 아내의 병간호에만 힘썼다.

 “유방암 2기였어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낮에는 병간호를 했고 저녁에는 농장으로 와 새벽까지 일했어요. 하루에 거의 3시간밖에 못 잤던 것 같네요.” 다행이 그와 가족들의 노력으로 아내의 상태는 비교적 빠른 시일 내 호전됐고 그 역시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쿼터제를 원망해봤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농가의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수입에 맞게 농가를 운영했다. 또한 축사 내부를 다지고 관리를 철저히 해 더욱 좋은 우유를 생산해내기로 했다. 노력하는 자에 운이 따르듯 거래처에서는 ‘저지방 우유’ ‘고칼슘 우유’등 새로운 우유 브랜드로 사업을 다시 확장하면서 성보농장의 납품량을 예전보다 더 늘렸다. 그가 현재 꾸준히 연 매출 3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이유다.

 “실망만 하고 남을 탓하다 보면 자연히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힘든 시기일수록 철저한 관리와 경쟁력 있는 우유 생산만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어떤 시련이 오던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충실히 할 예정입니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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