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비즈 칼럼

베트남 '쩌우 까우' 대접받은 경제사절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베트남에는 ‘쩌우 까우’라는 전통 음식이 있다. 쩌우라는 이파리에 까우라는 열매를 싼 것인데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음식 이상의 뜻을 갖는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과 우정의 맹세, 사랑의 출발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반가운 손님이나 우정을 맹세한 친구에게만 쩌우 까우를 대접하곤 한다.

 추석을 앞두고 베트남 전통음식 이야기를 꺼낸 것은 7일부터 닷새간 베트남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이 받은 ‘쩌우 까우 식’ 극진한 환대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내놓을 수 없는 파격적인 예우를 연일 베풀며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신호탄을 쏴 올렸다.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은 9일 “진정한 친구가 왔다. 한국은 진정한 친구의 나라”라며 환대했다. 특히 박 대통령을 호찌민 거소로 몸소 안내했는데 이는 베트남 외교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쩌우 까우 대접은 같은 날 국빈 만찬에서 절정에 달했다. 쯔엉떤상 주석은 주석궁에서 조촐히 하려던 국빈 만찬을 장소까지 바꿔 경제사절단 전원을 초대했다. 수행 경제인의 극소수만 참석시키는 외교 관행을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이었다. 만찬장에 ‘친구여’ ‘만남’ 등이 울려 퍼질 때는 베트남의 진심 어린 배려에 많은 기업인이 감동했다.

 8일 대한상의가 주관한 ‘한·베트남 경제협력 간담회’에서 이미 이런 분위기가 엿보였다. 호앙쭝하이 부총리 등 베트남 각료들은 우리 기업인들의 빗발치는 요구사항을 1시간 넘게 경청했다. 질문 공세에 지칠 법도 한데 노무 문제부터 발전소 건립 규제, 인허가 절차 지연 등 쏟아지는 질문과 건의에 성실히 답하며 조속한 해결을 약속했다. 외국 경제사절단이 방한했을 때 몇몇 전문가가 나서 한국의 투자환경을 간단히 설명하고 끝내곤 하는 국내 풍경과 사뭇 대조돼 참석 기업인들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베트남의 전방위적 환대에 박 대통령은 베트남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외교로 화답했다. 몸소 한복을 입고 런웨이에 서는가 하면, 호찌민 묘소를 찾아 헌배하며 40여 년 전의 아픈 과거사를 털어내기도 했다. 또 고속도로 건설 지원, 베트남 인력 한국 내 고용허가제 재개 등 다양한 개발협력을 약속했다. 이러한 노력 덕에 이번 경제사절단의 귀국 보따리는 더없이 두둑했다. 양국은 2020년까지 교역 규모를 700억 달러로 늘리고, 내년까지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로 했다. 또 원전 등 에너지·자원 분야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참여 기회를 늘리기로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도 있었다. 역대 최대 규모로 구성된 이번 경제사절단 참석 기업인들은 2박3일 동안 함께 움직이며 베트남 시장에 대한 정보를 나누며 네트워크를 다지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번 베트남 방문의 가장 큰 성과는 뭐니 뭐니 해도 양국이 새로운 시대를 연 점이다. ‘조화를 이룬 친구들이 힘을 합치면 바다라도 비울 수 있다’는 베트남 속담처럼 양국 국민과 기업인이 신뢰에 기반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20년을 일구길 기대한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