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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수익성 급감 … 사옥 팔고 후순위채 발행 '생존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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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LIG손해보험은 최근 선릉역 인근의 시가 400억원대 사옥을 팔기로 했다. 필요 없는 건물이라서가 아니다. 매각한 뒤에는 다시 임차료를 주고 건물을 쓸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보유자산 중 부동산의 비율이 높은 편인데 수익성은 떨어져 매각에 나선 것”이라면서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이라고 밝혔다. LIG손보의 RBC 비율은 올 3월 177%에서 6월 165.7%로 떨어졌다. 금융감독원이 보험사에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150% 선에 근접한 수준이다.

 RBC 비율이 159.5%로 권고치를 겨우 넘긴 KDB생명은 본사를 서울 중구 서소문에서 용산구 동자동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임차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입주한 건물의 임차료가 많이 오를 것으로 보여 미리 옮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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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옥 매각 혹은 이전에 나서는 보험사가 잇따르고 있다. 수익성 급감으로 재무건전성에 이상 신호까지 켜지자 ‘마른 수건 짜기’에 들어간 것이다. 손해보험사들의 경우 1분기(4~6월) 당기순익이 43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41억원)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미국발 ‘양적완화 축소’ 충격에 들고 있던 채권 값이 급락하고, 자동차보험 손해율까지 급등한 탓이다.

 당장 바쁘게 움직이는 건 RBC 비율이 권고치를 밑돌거나 근접한 곳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최근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RBC 비율을 높이려면 자본을 늘리거나 부동산 등 위험자산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한화손해보험은 11일 주주총회를 열고 15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한화손보의 6월 말 기준 RBC 비율은 147.1%였다. 이번 증자로 회사는 이 비율이 180%대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이카다이렉트(135.6%)도 지난달 21일 3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메리츠화재(170.4%)는 지난 4일 246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NH농협증권 이경록 연구원은 “RBC 비율이 200%를 밑도는 보험사 14곳의 후순위채 발행 규모는 7261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금감원은 내년까지 보험사가 입을 수 있는 예상손실액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신뢰수준을 현재의 95%에서 99%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 경우 RBC 비율은 기존보다 50%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권고치에 맞추려면 200% 이상을 가져가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험사들의 아우성이 커지자 감독당국도 ‘숨통 틔워주기’에 나섰다. 12일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보유한 신종자본증권의 위험도를 주식 수준에서 주식과 채권의 중간 값으로 낮춰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조치 등으로 전체적으로 RBC 비율이 5%포인트 올라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게 금감원의 추산이다.

 생보업계도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특히 2000년대 이전에 판매한 고금리 상품이 두고두고 부담이 되고 있다. 해외 자산운용으로 눈을 돌리는 업체들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4일 미국 보험사 뉴욕라이프와 공동으로 현지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5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국내 영업과 자산운용만으론 수익성 제고에 한계가 있다”며 “현지 보험사와 투자부터 운용까지 공동으로 하며 자체 투자 역량을 키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생보사들이 저축성 보험 대신 보장성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는 것도 수익성과 관련이 있다. 받은 보험료를 잘 운용해 돌려줘야 하는 저축성에 비해 보장성은 보험사 입장에서 운용 부담이나 금리 변화에 따른 위험이 적다. 특히 그간 보장성 보험의 비중이 낮았던 중소형사들이 영업전략을 발 빠르게 바꾸고 있다. 동양생명과 신한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중소형사들은 올해 보장성 보험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지급여력(RBC) 비율

보험사가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자본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비율이 200%라면 보험 사고가 한꺼번에 터져 일시에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황이 두 번 연속 닥쳐도 파산하지 않을 만큼의 자본을 쌓고 있다는 뜻이다. 100% 이하가 되면 감독당국이 단계별로 적기 시정 조치에 들어간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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