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맞춤법」에 이의 있다|서울대 문리대 교수 허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얼마 전에 문교부에서 맞춤법과 표준말을 다시 사정한다는 말이 나오게되자 맞춤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게 되어서, 그동안에도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고있다. 필자도 앞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발표한 바가 있다. 지금 우리들이 쓰고있는 맞춤법은 약간의 불비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할만한 결함을 가진 것은 아니란 점을 역설하였고, 그 점에 있어서는 지금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있다.
지금의 맞춤법의 근본원칙은, 소리와 뜻의 단위인「형태소」를 고정하여 표기하도록 되어있으므로, 말의 뜻을 파악하는데 편리할 뿐 아니라, 언어학적 이론으로도 매우 합리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말에 여러 가지 토가 붙은 꼴들은 그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면 「사람도, 사람과, 사라미, 사라믈」과 같이 적어야 하겠지만「사람」이란 꼴을 그대로 유지하여 표기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으로 우리는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사람을」과 같이, ㅁ을 받침으로 하여 표기해온 것이다.
이러한, 거의 본능에 가까운 표기방식에 따라 「밥을, 밥이」「꽃이, 꽃을」로 적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무슨 깊은 학문적인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먹다」의 경우에 있어서도 한가지다. 이 말에 있어서는 「먹-」이 으뜸 되는 뜻을 짊어지고 있는 뿌리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정시켜 두는 것이 말의 이해에 편리하다. 그러므로 「먹으니, 먹어」에 있어서도 「받침을 붙여 「먹-」이란 부분을 고정시켜 두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좇는다면 둘 받침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와같이, 으뜸 뜻을 가진 말과 토를 구별해 적는다면,「갑시」 란 말에 있어서도 으뜸 뜻을 가진 부분과 토를 분별해야할 것이므로 「값이」와 같이 표기하지 않을 수가 없게되는 것이다. 또 「먹어, 입으니」와 같은 방법으로 표기한다면, 「훑어, 훑으니」로 적을 수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맞춤법의 기본원칙이다. 무슨 특별한 학문적인 이론에 그 근거를 두고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우리들의 본능에 가까운 표기의욕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5백년 전에 훈민정음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문헌에도 「깊고, 빛나다, 딮동, 곶비, 깊거다」과 같은 표깃법이 나타나는 것은 이 표기방법이 우리들의 내부적인 언어 감정에 기초를 두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맞춤법은 약4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수정을 요할 점들이 있다. 「강가」의 경우「가」의 「소리는 된소리로 내며 이러한 현상을 사잇소리라 하는 것이 보통이다. 「내」와 「가」가 합해질 경우에는 「내」에 ㅅ 받침을 붙여, 「냇가」로 표기하는데, 「강가」에는 그런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강가」로 읽을 것인지「강까」로 읽을 것인지 망설이게된다. 또 병원 간판에 「내과, 치과」혹은「냇과·칫과」두 가지로 적었음을 본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사잇소리는 일률적으로 다 표기되었으면 좋겠다.
한 형태소의 꼴을 고정시키려는 기본원칙에 따라 「꽃답다, 끝장, 깊숙하다」와 같은 표깃법이 나타나는데 때로는 이러한 표깃법이 좀 지나치게되어 지금 맞춤법은 어렵다는 맡을 듣게되는 일이 있다. 「떨어지다, 넘어지다」를 「떨다, 넘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처리했기 때문에, ㄹ·ㅁ을 각각 받침으로 하게되었는데, 일반사람들은 「떨어지다」에서 「떨다」의 뜻을 파악하기는 힘드는 일이기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일이 많다.
이번 문교부의 위촉을 받고 국어조사연구위원회가 조직되었는데, 여기에서는 맞춤법과 표준말의 재사정을 위한 기초조사를 하기로 하고있다. 우선 맞춤법을 검토하기 위한 기초조사에서 그 첫 설문에 등장된 낱말의 수는 2백이다. 그 중에 「길이, 믿음, 애꾸눈이」따위를 「기리, 미듬, 애꾸누니」따위로 해야할 것인지를 물은 항목도 있는데, 이런 말들은 지금 맞춤법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걷다, 듣다」의 드 받침도 그대로 두어야할 것이고, 「짓궂이, 같이」들도 이제는 바꾸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약간 손댈 것이 있다면, 「받침, 맞춤법, 섣달, 숟가락, 넘어지다, 섣불리, 속삭이다, 망설이다, 유희」따위를 「바침, 마춤법, 섯달, 숫가락, 너머지다, 서뿔리, 속사기다, 망설이다, 유히」따위로 고쳤으면 좋겠다.
그밖에 띄어쓰기의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원칙적으로 낱말이라고 인정되는 말은 띄어쓰는 방법을 고정시키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도 한자어의 음도「비열, 규율, 극낙, 법뉼, 골란」따위로 하면 될 것이지, 굳이 한자의 음을 그대로 지켜, 「비렬·규률·극락·법률·곤난」으로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는 지금의 맞춤법은 극히 부분적인 수정을 요할 군데가 얼마만큼 있는 것은 인정되지마는, 그 근본적인 원칙은 수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받침은 일곱만을 쓰자는 사람이 있는 것 같으나, 그런 표깃법은 우리들의 본능적인 문자의식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