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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자세 찾는 한·일 상호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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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 중 일 동양 3국의 역대 도자 예술의 극치를 겨루는 동양 도자기전(7일∼11월30일)이 동경 국립박물관의 주선으로 마련돼 우리 나라에서도 청자 및 백자 12점을 뽑아 2일 일본에 반출한다. 국립박물관이 선정한 이들 도자기는 국유와 개인 소장품이 반반인데 그 중에는 「청자상감 진사 연판문 수주」「고려 백자사이일 등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것도 포함돼 있으며 「청자 압형수적」「청자상감목단문항」「청자상감 운학 문매병」등 국보 지정 물도 3점이다.
개항 1백년, 경술국치 60년, 그리고 국교 정상화 5년을 맞은 우리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입지를 발견해야 할 시기를 맞았다. 과거를 돌이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또 미래를 전망할 때. 한 일 두 나라의 관계를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학문적 연구를 통해 탐구, 이해할 필요는 현 시점에서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한 일 양국의 연구 현황을 살펴본다.

<한국에서의 일본 연구>학문적 이론 체계 확립 안돼|영리적인 일어학관만 번창하고|불쾌한 과거에 얽매여 연구 기피 알아야|몇몇 단편적인 저술 정도
오늘날 한국에서의 일본 연구는 거의 불모 상태에 있다. 중국과의 관계 못지 않게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이 현상은 정치적 혹은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서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화의 문호를 열고 한일 관계가 성립 된지 1백년, 경술국치 60년, 국교 정상화가 이룩된지 5년에 이른 오늘의 시점에서 한일 관계 연구는 새로 성립되어야 하며 일본에 대한 학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최근 학계에 크게 대두되고 있다.
세계에 있어서의 일본의 위치가 현실적으로 크게 두드러진 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으며 역사상 우리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에도 외면할 수 없다면 미래의 두 나라 관계를 예진하고 확고한 우리의 자세를 확립하기 위해서도 일본 연구가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불쾌한 과거」가 일본에 대한 연구를 기피하는 원인이 된다면 결과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커다란「마이너스」라는게 학계의 중론이다.
그렇다고 영리적인 목적을 위해서 생긴 2백여 개의 일어학관이 일본 연구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다.
현재 일본어과를 갖고 있는 대학은 한국 외국어대뿐이고 독립적인 일본 연구 기관은 하나도 없다.
단지 고려대 아세아 문제 연구소에 일본 연구실, 부산대의 한일 문제 연구소 또「극동 문화」를 내는 서울의 한일 문제 연구소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일본 연구는 한일 교섭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일본 연구는 고 이홍직 박사의 몇 편의 논문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이 일본을 하나의 대응 세력으로 인정, 단편적이나마 이들에 관한 연구를 보인 것은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에서였으며 개항 이후에는 박은식이『한국통사』와『독립 운동 지혈사』를, 신채호가 『조선 상고사』와『조선사 연구초』를 통해 일제로부터 구별되는 한국사 정립에 힘썼다.
광복 후의 한일 관계사 연구는 이선근 박사의『한국 최근세사』에 나타난 정도.
65년 한일 국교와 더불어 한일 관계사 연구가 새로운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이현종씨의 『조선 전기 대일 교섭사 연구』 신국주씨의『근대 조선 외교사』 김병하씨의『이조 전기 대일 무역 연구』등이 새로운 반생에 자리잡은 개척적 연구로 평가되었다. 이밖에 이용희 홍이섭 문정창 이기백 김영호 한치근 김준보 교수 등이 한일 관계 부문에서 몇 편의 논문을 내고 있다.
한일 관계사에 있어서 새로 주장되는 것은 일인 학자 말송보화의『주나 흥망사』가 전개한 임나일본부의 소재를 부정하고 가야 지역이 아니라 일본열도 또는 대마도라는 것이며, 정체적인 식민사관으로만 설명된 일인 학자들의 이론·해석을 객관성 있는 사관, 주체성 있는 적극적 자세로 파악하도록 이끌어 갔다는 점이다.
또 이현종 교수같이 이조 전기에 있어서 한국이 으례적이고 형식적인 소극성을 견지한데 대해 일본은 경제적·문화적·실질적으로 적극성 있는 교섭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고 관계 학자들은 말한다.
홍이섭 김영호 신국주 교수가 주장하듯이 한말의 개화파가 반드시 올바른 정신에 입각했던 것만이 아니고, 이들은 오히려 일본의 중상주의적 개발주의에 말려들었으며, 위정척사 파는 개발주의를 극복할 발전적인 힘은 갖추지 못하고 수구파로 몰리기도 했으나 자주의 정신적 지주였다는 것도 무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일 관계사 연구의 언저리에서 떠나 본격적인 일본 연구- 언어·역사는 물론 정치·경제·민속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적극적인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본에서의 한국 연구>어용 식민 사관에 자가 반성|근년에 소장파 중심으로 활기|방대한 자료…소장한 곳 많으나 정리 안돼|유수 대학서 전공과 설치
일제 때 한반도의 예속을 정당화하는 식민지 사관으로 일관했던 일본학계의 한국학 연구 태도는 1945년 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허물어졌다. 그러나 곧 이어 새로운 연구 태도의 정립을 보지 못하고 한국 동란이 터지기까지 일본 안에서의 한국학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근년에 와서 일본 학계에서는 과거의 어용 식민 사관에 대한 신랄한 자가 반성과 함께 한국학 연구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와서 유학한 소장 학자들을 주축으로 하여 이웃 한국을 배우고 이해하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과거 어용학자들이 그릇 남겨 놓은 방대한 식민 시대 저서의 중압에 눌려서 진통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의 한국 연구 현황을 체제 면에서 살펴보기 전에 천리대·동경대·척식대·국사관대 등에서 한국학 관계의 강좌가 설치돼 많은 후진을 양성해 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해방후 일본인으로 구성된 한국 연구 단체를 보면 조선학회·조선사 연구회·조선 연구회 등이 있고 동양문고 및 동경대 부속 연구소인 동양 문화 연구소와 동사료 편찬소 등이 있다.
이중 조선학회는 연구잡지『조선학보』를 발행하여 현재 50호까지 나와 있는데 이는 외국에서 낸 한국학에 관한 학술지로는 처음이다.
이 학회는 과거에 한국 관계 연구를 하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51년에 설립된 것인데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한국학을 시작한 천리대의 재정적 뒷받침을 받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는 최근『일선 관계사의 연구』3권을 낸 한국 관계 권위자 중촌형효 교수와 한글 연구로 고려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대곡삼번씨를 비롯하여 중촌완, 청산수웅 등 소장 학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조선 연구회에서도 연경학회로부터 재정적인 후원을 얻어서 약 50 페이지의「조선 연구년보」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 관계 사료 소장 처로는 동양문고·동경대학의 사료 편찬소·국회도서관·천리대학 부속도서관·봉좌문고·수야문고·정가문고 등이 있다.
사료 편찬소는 일본 국사 편찬을 위한 자료 수집 분류를 하는 곳으로 분류된 사료들을 종전 전부터 출판하고 있다. 일본에 관계되는 모든 사료는 1차적으로 여기에서 수집되며 그 규모도 크다. 국회 도서관에서는 근대 사료가 많으며 특히 한국의 개항 이후부터 1910년을 전후한 기록 문서 류가 많다. 헌정 자료실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한국 관계 자료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리대 부속 도서관에는 과거 한국 관계를 연구하던 사람들이 일찍부터 수집한 책과 사료가 어느 도서관 못지 않게 많이 소장되어 있다.
더우기 이 대학 부속 박물관에는「아시아」전역과「아프리카」지역에서 수집된 고고 유물, 민속 관계 자료가 풍부히 소장되고 있어 일본 내에서도 동경 시내에 있는 상야 박물관에 못지 않게 많다고 이현종 교수는 전한다.
그러나 아직 정리되지 않아 진열되지는 않고 있으나 중국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믿어지며 한국 관계 유물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현재와 같은 밝은 전망이 계속되어 한국학 연구열이 더욱 활발해지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자료들도 많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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