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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역사는 화해하며 발전한다 … 씻김굿 마친 새 친구 한국과 베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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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초등학생이던 1970년대 초반, 이웃에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가 살았다. 베트콩 수류탄에 시력을 잃은 상이용사 가장이었다. 그 집은 온 식구가 편지봉투를 붙이는 일을 했는데 늘 가난했다. 이렇듯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무거운 이미지로 시작됐다.

 75년 월남 패망 뒤 부산에 도착해 서대신동 옛 부산여고 자리에 임시로 자리 잡은 보트피플은 거기에 중압감까지 보탰다. 당시 중학생으로 통학길에 일부 난민이 도로변으로 난 창을 통해 남베트남 지폐를 거리로 내던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에 나오는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휴지로 변한 돈이 거리에 낙엽처럼 나뒹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 베트남은 기형도 시인이 읊은 ‘잎 속의 검은 잎’처럼 뭔가 불안하고 두려운 이미지로 변해갔다.

 90년대 초, 한국 정착 난민이 서울 혜화동에 베트남 음식점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찾아갔더니 한국인이 꺼리는 향채를 듬뿍 쓰고 젓갈 냄새도 솔솔 나는 오리지널이었다. 당시엔 이국적인 맛이 인기가 없었는지 가게는 한산했다. 그 뒤 미국에서 맛이 개량된 베트남 국수 체인점이 들어오면서 그 가게는 조용히 사라졌다. 이렇듯 베트남은 비극의 이미지를 더해갔다.

 이미지가 바뀐 건 몇 해 전 영국 런던을 찾았다가 우연히 마주친 호찌민 블루플라크 때문이었다. 블루플라크는 그 건물에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을 추억하는 푸른색 원형 표지다. ‘영국·베트남 협회. 호찌민. 1890~1969. 현대 베트남의 창설자. 이 자리에 있었던 칼튼호텔에서 1913년에 일했다’는 표지가 런던 중심지 트래펄가 광장 인근의 뉴질랜드하우스 벽에 붙어 있었다. 그 건물 1층의 스포츠 카페에 들렀다 입구 옆에서 이를 발견하곤 놀랐다.

 미국 역사학자 에드윈 키스터 주니어의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전』이란 책을 봤더니 20대 때 프랑스·미국·영국·러시아를 돌아다닌 호찌민이 한때 이곳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다고 한다. 지도자를 미화만 하지 않고 미천했던 시절도 알리는 영국·베트남 협회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혁명밖에 모를 것 같았던 그가 갑자기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식민지 청년 호찌민의 고뇌가 어떠했을까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당시엔 한국도 식민지였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이 9일 베트남에서 국부 호찌민 묘역을 참배했다. 전날엔 양국 기업인을 만나 베트남어로 ‘지벗비엔 응번비엔(以不變 應萬變)’, 즉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모든 변화하는 것에 대응한다’는 그의 좌우명을 언급했다고 한다. 베트남이 무척 가까워진 느낌이다. 역사의 씻김굿을 마치고 친구로서 변화의 새 시대를 여는 두 나라의 모습이 애틋하지 않은가.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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