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던진 플랜덜리드 박사 진단|재연되는 석굴암 전실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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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로마에 있는 국제 문화재 보존 연구 소장 해럴드·플랜덜리드 박사의 방한을 계기로 하여 경주 석굴암의 원형에 대한 논의는 국내 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석굴암을 진단한 종합 보고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이한 하기 하루 전인 24일의 기자 회견 내용도 보고서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시간 반에 걸쳐 발표한 그의 석굴암 진단은 ⓛ굴 안의 습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전실의 문을 활짝 열어 제쳐야 하고 ②확실한 증거가 없는 전실 목조 가구는 없앤다는 두 가지 전제아래 여러 가지 과학적 실험을 실시하도록 당부하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었다.
문공부가 1백만원의 예산으로 초청한 플랜덜리드 박사는 세계 각지의 문화재에 대한 보존 과학의 제 문제를 다뤄 본 노대가일 뿐더러 정부가 공식 초빙한 인사인 만큼 그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고 또 그의 견해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그것은 특히 국내 미술 사학계의 지혜를 모아 복원 준공한지 6년 밖에 안 되는 석굴암 전실의 목조 팔각 기와집을 송두리째 들어내 버리자는 제안이므로 더욱 충격적인 문제로 새삼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석굴암 전실의 유무를 둘러싼 논쟁은 작년에 이미 남천우 교수(서울대 공대)와 신영훈 문화재 전문위원(석굴암 공사 당시 보조 감독관)사이에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플랜덜리드 박사의 조언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재연시킬 소지를 만들어 놓았다. 문화재 위원회는 앞으로 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게 될 것은 물론이다. 또 문화재관리국은 플랜덜리드 박사의 보고 내용을 시행하기 위해 국내 학자로 구성된 실시 단을 위촉하고 설계와 공사까지 일임할 방침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있을 석굴암에 대한 조사와 공사는 단시일 안에 이루어질 성질의 것도 아니고 또 그 범위마저 짐작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어떤 결론에 이르기까지에는 적잖은 논쟁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의 석굴암 전실은 미술 사학회의 견해를 집약해 지은 것이다. 61∼64년의 수리 공사에는 여러 과학자들이 참가했으나 그들은 목조 건물을 복원하는데 이렇다 할 참여를 하지 않았다.
석굴암 대공사의 중앙 감독관인 황수영 교수를 비롯하여 김상기·이홍직·김원룡·조명기·주홍섭씨 등 문화재 위원들에 의하여 검토되고 설계된 것이다.
굴 밖으로 노출돼 있던 팔부신장(중상) 위에 지붕이 씌워져야 한다는 점은 몇가지 사례로서 입증되었다.
첫째 이조 중기의 화가인 겸재의 『경주골 굴석굴』그림에는 석굴암이 한 채의 기와집으로 표현돼 있다.
둘째 현재 절터만 남아 있는 괴산 미륵 당리 석굴 사원의 유적을 살펴보면 석굴암과 똑같은 형식의 가람 배치이다.
즉 방형의 석굴 앞에 비도가 있고 잇대어 전면 3간 측면 1간의 주춧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 현존하는 다율사의 고려 석굴도 목조의 눈썹 지붕을 붙여 문을 달았고 마애불 머리 위에 목조 지붕을 달았던 것은 상식으로 돼있다.
세째 현장에서 많은 기왓장과 쇠못이 발굴된 것은 건물의 흔적이다.
이러한 실증에 의하여 목조 건물을 세운데 비하여 과학계의 주장은 대체로 목조 가구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석조 건물로서의 외관을 가지고 있었으리라는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관심 있는 과학자들 개개인의 의견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지만 남천우 교수의 경우는 『대담하게 개방된 구조였다』는 점에서 플랜덜리드 박사의 의견과 일치하고 있다.
플랜덜리드 박사는 60년의 석굴암 답사 보고서에서 전실 문의 유무에 대하여 의문을 표시했을 뿐이나 이번에는 활짝 열어 제쳐 굴 내의 자연 건조를 제의했고 또 목조 건물을 없애 노출시키되 우기에만 이동식 문을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석굴암의 원형은 알지 못하지만 확증 없이 인위적으로 첨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론이다.
물론 그는 이번 석굴암 진단에 앞서 석굴암의 원형에 대한 구체적인 고증을 청취하지 않았다. 문화재 관리국은 적어도 수리 공사 보고서를 요지만이라도 영역해 줬어야 할 것이지만 실제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또 현장 조사에 함께 참가한 사람도 김유선·양재현·이태령·김효경·남천우씨 등 과학 분야의 교수가 대부분이다. 프랜덜리드 박사가 석굴암에 머물러 살핀 것은 2시간 남짓하며 그것도 거의 국내 과학자들의 설명을 듣는데 소요됐다. 그래서 이번 그의 보고서에는 과학계의 의견이 적잖게 반영될 것으로 대다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석굴암의 원형으로 보이는 그림이나 다른 실례가 없는 이상 본래의 모습은 그대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6년 전의 보수 이전 상태를 보았던 사람들은 석조가 겉에 드러나 있는 석굴암을 쉽게 생각한다. 또 현재의 높다란 목조 건물이 눈에 익숙치 않고 혹은 주위 환경에 냉큼 조화되지 않아 미관상의 약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돔 전면 아치 위에는 광 창이 있고 돔의 봉토는 원래 흙이 아니라 돌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돔은 내원외방하고 하부를 큰돌로만 쌓았으므로 자연 통풍이 저절로 되었다. 사천왕상 입구에는 문이 있었고 팔부신장의 돌 조각은 후대에 세운 것이다. 팔부신장의 양쪽 끝은 직선으로 펴야만 낌새가 맞는지 몰라도 일제 때대로 L자로 굽게 하고 눈썹 지붕을 덮으면 목조 건물의 위압감은 없어질 것이라는 등등의 여러 가지 견해가 오고 가지만 누구에게나 수긍되는 확증은 아니다.
플랜덜리드 박사의 10일간(16∼25일)에 걸친 방한 보고로서 목조 가구를 없애자고 제의했지만 그 뒤에 천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생각한 바 없다고 했다. 또 벽면 제습을 위해 벽체 온도를 높이자고 했으나 그 경우 본존불에 엉길 습기 처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 밖의 몇 가지 실험을 과학자들에 부탁했을 뿐이다.
어쨌든 플랜덜리드 박사의 2시간 동안의 석굴암 조사는 원점에 돌아가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고, 그래서 학계에는 커다란 쟁론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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