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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그 진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유진산 당수는 40대 세 사람 중 두 사람만의 지명권 양도만으로도 지명권을 행사할 것인가』 『40대 단일화 실패로 간주, 경쟁에 나설 것인가』 신민당의 지명조정은 이 하나의 의문을 남긴 채 결말 한발 앞에 다가서 있다.
유당수는 지난 22일 정무회당에서 40대 단일화가 끝내 안되면 나는 나를 후보로 지명하는 당령에 따를 것이라고 해서 사실상의 출마선언을 했고 바로 사흘 뒤인 25일 『40대는 지명권을 내게 달라』면서 불출마 결의에 기운 주사위를 던졌다.
유당수의 진의에 대한 풀이는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대변해오던 사람들 마저 엇갈리고 있다.
고흥문 사무총장은 『유당수는 진심으로 출마할 생각이 없으며 두 사람만의 지명권 양도 만으로라도 당내 노장층을 이해시키는데 성공하면 둘 중 한 사람에 대한 지명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 대변인인 김수한씨는 『유당수가 후보에 연연하는 것은 아니고 둘만의 양도로라도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40대 단일화가 김대중씨 거부로 실패한 이상 유당수가 후보경쟁에 나설 가능성은 남아있다』면서 오히려 출마가능성에 역점을 두었다.
이 두 엇갈린 풀이에 대해 유당수는 25일 고 총장 김 대변인 두 사람, 그리고 다른 간부들이 함께 있는 가운데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했기에 고 총장은 그런 발표를 했소』라고 말하고 김 대변인에게는 『내가 둘 중 한 사람을 택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유당수의 초기 불출마는 유진오 고문의 건강이 회복되면 후보로 나설 수 있고 그때는 유 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정치도의를 느끼고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그가 당수경쟁을 하면서 그를 지지해줄 김영삼씨에게, 또 정쟁법에 풀리고서도 선뜻 제1야당인 신민당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이철승씨를 신민당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나는 후보경쟁에 나서지 않고 젊은 당신들을 밀겠다』는 암시를 주었음직하다. (이·김씨가 모두 이런 얘기를 했었다.)
더우기 유씨가 당수가 되면 사이비로 전락하는 야당에 남을 수 없다는 그에 대한 극단적 일부 공격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유력 인사들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했었다.
대회가 가까워 지면서는 와병 중의 유 박사의 출마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40대들은 마치 유당수는 후보 공민권을 제한 받은 것처럼 행동했다(유당수 말). 그래서 40대를 견제하는 노장들이 들고일어나 후보는 당 내외에서 자그마치 7명을 꼽을 수 있었다.
이 혼미상태로는 지명대회를 할 수 없었으며 유당수가 나서야만 이 혼미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회가 가까워지고 40대 세 사람의 경쟁 투표가 불가피한 것으로 밀려가고 당내 노장층이 40대 견제를 위해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유 박사의 불출마가 확정되자 유당수가 후보를 겸해야 한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그러나 그의 조건부출마선언 후의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1월 대회의 당수 경쟁자였던 이재형·정일형씨가 비주류를 규합, 당권도전에 나서고 40대의 어느 누구도 한 발짝도 후퇴함이 없이 당수와의 표 대결채비에 나섰다. 비주류의 모임은 40대 세 사람과 연합해서 커져 갔다.
29, 30일의 대회에서 유당수는 40대 세 명의 후보 경쟁 투표와, 주류와 비주류의 당권경쟁 투표를 치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김대중씨는 40대 조정주역이던 고 총장의 (1)당수에 지명권 (2)용퇴자에 지명권을 주자는 두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이는 그 두 안이 모두 김씨 자신의 후보지명은 기대하기 어려운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보면 유당수가 5자 회담에서 되풀이 제안한 당수지명권은 김대중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라는 1차적 판정을 거쳤던 것이다.
유당수와 김대중씨는 단일화 실패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며 경쟁으로 갈 것인지 극적 조정이 이뤄질지, 그 열쇠는 유당수의 결심에 맡겨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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