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대전의 25시(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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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딘 장군의 피체>(2)
딘 장군의 한국전쟁체험수기인 『죽음의 생활 3년』(My Three Years As Dead Man by Maj. Gen. Willam F·Dean)중에서 장군이 잡힐 때까지 36일 동안 헤매던 모습을 전회에 이어 계속 다루기로 하겠다. 『테이버 중위와 나는 걷다보니까, 큰길가에 나서게 되었다. 그런데 그 길은 넓은 벌판을 끼고 있어서 우리가 길을 건너려고 할 때마다 적병과 차량이 눈에 띄곤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수풀 속으로 금산을 향해서 남하하기로 작정하였다. 오후에 한 천막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천막은 대전에서 피란 온 모자 단 둘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물론 모자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피란 온 모자의 천막서 피신>
그러나 고맙게도 우리에게 밥을 주면서 지금은 위험하니까 어두울 때까지 천막 속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좀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잠이 깬 후 영동으로 좀 인도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더니 거기도 적군 손에 들어갔다는 것을 손짓으로 알려주었다.
만일 이 소식이 정말이라면 우리는 극히 불리한 지점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 된다. 우리가 금산을 향해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곳으로 가려면 좁다란 산길을 타고 가야하는데 그 영동 주변 마을에는 이미 공산군이 꽉 차있을 것이다. 이 지역은 내가 군정장관으로 있을 때에도 공비가 득실거려 토벌대를 배치했던 곳이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금산으로 돌려 남으로 내려간 다음 그곳에서 무주로 가서 대구로 빠져나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남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확실한 기억은 없지만 이렇게 걷기를 아마 이틀이나 사흘정도 때서 한 조그만 마을에 다다랐다. 금새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나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이 물과 생쌀을 갖다 주었다. 날계란도 한사람에 두알씩 주었다. 이 중에는 두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알았는데 한 사람은 꽤 잘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주 서툴렀다.

<금산·무주로 방향 바꿔>
마을 사람들은 모두 우리편처럼 친근해 보였기에 나는 그들에게 만일 당신네들이 우리를 대구에까지 인도해 준다면 상금으로 1백만원을 주겠다고 말해 보았다. 그때의 환율이 8백60대1이었으니까 미국 돈으로 약1천1백 불이 된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는 곧잘 해도 계수에는 그리 밝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땅바닥에다 1백만원이란 보수를 아라비아 수자로 써서 보였다.
우리는 이때에 영어를 꽤 잘하는 자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어에 아주 서투른 자가 나의 제의에 쉽게 응낙했다. 연방 OK를 연발하면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우선 자기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내일 새벽에 대구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한쪽에 있는 어떤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거기서 테이버 중위와 나는 군화를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한국 사람은 우리와 함께 앉아서 서투른 영어로 자기마을 사람들은 어느 편에 붙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연필로 종이에다 한쪽에서는 미군이 손을 내밀고 그 반대쪽에서는 공산군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 보이면서 입장이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가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을 하면서도 어느새 잠에 골아 떨어졌다.

<영어 잘하는 자가 적에 밀고>
몇 시간 후에 아마 이른 새벽 같았는데 총 소리에 잠이 깼다. 같이 있던 그 한국 사람은 총성이 나자마자 쏜살 같이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적들입니다] 테이버 중위는 이렇게 말하면서 카빈을 끌어 잡았다. 밖에서는 이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외국 놈아. 죽이지는 않을 테니 나와! 우리는 인민군이다. 나오라!] 내가 이때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세련된 영어였다.
우리는 나가지 않았다. [자, 구두부터 신자.] 이렇게 말하고 빨리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는 우리는 부랴부랴 다른 문으로 빠져나갔다. 총알을 피하여 바로 집 옆에 있는 옥수수 밭 속으로 뛰어들어 조그만 언덕을 향해 기어올라갔다.
[내가 앞장선다. 너는 카빈으로 나를 엄호하라. 나는 권총으로 네 둘레를 보살필 테니]
또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옥수수 밭에서 적 사격 받아>
[테이버 나는 항복하지 않겠다. 항복할 이유가 없으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총알은 자꾸 날아 왔다. 적은 벌써 우리가 옥수수 밭에 있는 기미를 알고 마구 사격을 가해왔다. 거의 언덕까지 기어오르니까 사람들이 눈에 띄어 다시 길을 바꾸어 마을로 되돌아왔다.
마을은 온통 야단법석이었다. 모두가 길가에 나와 수군거리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우리는 이틈을 타서 마을 사람들 사이를 뚫고 거기를 떠났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갈 길을 감히 막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뒷마당을 지나 집과 집 사이를 돌아 기어이 마을 다른쪽 논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우리는 논바닥에 엎드려 배와 팔꿈치로 기어 나갔다. 논두렁마다 두서너 명의 공산군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다행히도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틈을 타서 두 논두렁을 기어 넘어갔다. 그리고 세 번째의 논두렁도 무사히 넘었다. 그런데 중간쯤 해서 뒤를 돌아다보니 테이버 중위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부터 3년 동안 나는 한 명의 미국 사람도 볼 수가 없었다.

<권총알 l2발만 남아 걱정>
나는 만36일을 산간적지에서 보냈는데 그 동안에 내 마음은 여러 가지 근심과 초조로 몹시 괴로웠다.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길이 없었으며 부하들에 대한 걱정과 적정보를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우군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 등으로 꽉 차 있었다. 또 권총 알이 12발 밖에 없다는 것도 걱정거리였다.
테이버 중위를 기다리며 논두렁에 엎드려 있을 때 이제 권총을 써야할 때가 왔나보다 생각했다. 테이버는 내가 짐작한 곳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따라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냇물이 흐르는 길옆으로 가 보았지만 거기도 없었다. 나는 테이버 테이버하고 불러 보았다. 그러나 대답 대신 공산군의 총알이 날아왔다.
30분쯤 지난 다음 나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건너온 논두렁에 기어 돌아가 보았다. 그곳에도 없었다. 날은 벌써 환히 밝았고 공산군도 없어지고 보니 나는 마치 양을 훔친 개와 같은 심경이었다. 겨우 겨우 길을 따라 내려가 공산군이 파 놓은 구멍이 몇 개를 발견했다.
참외 껍질이 너저분하게 깔린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테이버가 어떻게 돼서 나와 떨어지게 됐는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짐작컨대 고개를 숙이고 곧장 간다는 것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자기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동행 중위는 8월4일 잡혀>
그리고 그때는 그가 적에게 잡힌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훨씬 나중에 안일인데 테이버는 8월4일에 포로가 돼서 대전으로 후송됐다고 하니 며칠은 더 숨어 있었던 것 같다. 이 불쌍한 친구는 대전에서 북으로 호송되는 도중 우군기의 오폭으로 부상을 입었고 그후 영양실조로 폐렴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구덩이 속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는데 한 농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고맙게도 그는 세 살쯤 되는 어린 계집아이를 업고 아까 내가 빠져 나온 마을 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그도 나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농부 옆으로 가서 손을 배에다 갖다대며 밥이라고 말해 보았다. 이것이 통했는지 그는 구덩이에 돌아가 있으라고 손짓을 하더니 한 시간도 채 못되어 밥 한 사발을 들고 돌아왔다.
미친 듯이 손으로 퍼먹고 좀 남은 것을 지도 반장에다 싸두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한국지도 반장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필요치 않게 됐기 때문이다. 구덩이에 쪼그리고 앉아 권총을 꺼내들고 탄환을 재지 않고 시험삼아 쏘아보았더니,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총을 손질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 후에도 거의 매일 같이 총을 소제하곤 했다.
나는 평소에도 군인으로서 투항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우기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독일장군의 투항을 좋은 선전자료로 삼았듯이 공산군도 나를 그렇게 이용하리라고 짐작했다.

<여차하면 자결할 결심도>
이 12발의 권총 알로 나의 투항을 막을 수 있다면 절대로 적에 항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총알도 매일처럼 닦고 또 닦았다.
밤에 아까 그 농부가 밥을 더 가지고 왔다. 그는 지도에 싼 남은 밥을 보고 냄새를 맡더니 상을 찡그리며 내버렸다. 그는 만약 밥을 잘 간직해두려면 공기가 잘 통하는 헝겊 같은데 싸두어야지 종이 같은데 싸두면 몇 시간 안에 쉬어버린다는 의미를 시늉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해가 저물자 나는 길을 떠났다. 남쪽으로 갈 심산인데 어찌된 셈인지 동쪽으로 걷고 있었다. 여하간 나침반도 없이 제멋대로 산길을 걸었다. 밤길이어서 불빛을 이용할 수도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시계가 고장이 나서 몇 시간 걸었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무턱대고 짐작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흐린 날씨가 계속되어 별(성)로 방향을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2, 3일 동안을 그저 완전히 그냥 제자리에서 뱅뱅 돌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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