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 감독의 충고 "오로지! 조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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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끝날 때까지 물 갖다 놓지 마. 운동장 서너 바퀴밖에 돌지 않은 놈들이 물만 찾고 난리야. "

매서운 눈매는 여전했다. 칼끝 선 말투도 예전 그대로였다.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끌었던 박종환(65)감독은 지금 제주도 서귀포에 있다. 신생 프로팀 대구 FC를 조련하기 위해서다. 창단 감독으로 7년 만에 현장에 돌아온 그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특유의 지도방식만은 변함이 없었다. 독기 빠진 박종환을 상상할 수 있을까. 변방의 한국 축구를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비결은 무엇일까. 그를 만나 20년 전 그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선에 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우린 골 득실차로 북한에 뒤져 3위였지. 아시아에 배당된 티켓은 두 장, 우리는 탈락이었어. 그런데 대회 3개월 전 북한이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바람에 출전권을 빼앗겼지. 그래서 어부지리로 우리가 중국과 함께 본선에 나간 거야. 당시 협회에선 '가서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포기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지만 내가 악을 쓰며 우겼어. "

-훈련은 어떤 식으로 했나요.

"기계적이고 잔인했어. 3개월 앞두고 부랴부랴 팀을 꾸려 단기간에 최대한 효과를 내야 했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었지. 하루에 세 차례, 새벽.오전.오후 훈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어. 따로 체력훈련이 필요없을 정도였지. 지옥 같은 세월을 참아낸 어린 선수들이 대견할 뿐이야. "

-독특한 훈련방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마스크를 끼고 뛰게 했어. 멕시코는 해발 3천7백m나 되는 고원지대라 산소가 부족하거든. 그래서 적은 산소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던 거지. 맨 처음에는 5분 만에 선수들이 픽픽 쓰러지더군. 그런데 대회 직전엔 마스크를 쓰고 30분 정도는 까딱없이 뛸 수 있게 됐지. "

-어떤 전술을 사용했나요.

"아홉 가지 전술을 패턴화했는데 이 중 여섯 가지는 완벽하게 소화했어. 미드필더부터 선수들끼리 숫자를 외쳐 그에 맞는 공격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거지. 남미보다 개인기가, 유럽보다 체력이 떨어지는 형편에서 조직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고, 이게 맞아떨어져 4강까지 가능했던 거야.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몇몇 선수들은 지나치게 개인기에 집착해. 팀플레이가 최고야. 그걸 당부하고 싶군. "

서귀포=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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