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상인 골라 보이스 피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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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몇 달 전 서울 광진구에서 동네 주점을 운영하던 진모(52·여)씨는 ‘복비’ 몇 푼을 아껴보려고 인터넷 중개사이트에 가게를 내놨다.

 “○○○ 주점 내놓으신 사장님이세요? 가게 매매되셨나요?”

 어느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공인중개사 상가개발팀 김대리”라고 했다. 20분 넘게 유창한 설명이 이어졌다. “복비 400만~500만원 시원하게 깎아 드리고 법적 수수료 0.7%도 받지 않습니다.” 진씨는 광고비 13만원을 그날 송금했다. 매수자는 금세 나타났다. 그런데 서로 권리금을 보장받자며 ‘권리계약체결공고’를 내야 한다고 했다. 190만원이 더 들어갔다.

 잘되는 줄 알았던 계약은 며칠 뒤 일방적으로 깨졌다. 업체는 가게를 경매에 부치자며 또 돈을 요구했다. 공고 비용으로 280여만원을 냈다. 수백만원대 낙찰 수수료 5번을 더 내고 나니 남은 건 은행 빚뿐이었다. 진씨는 결국 가족들에게 유서를 쓴 뒤 입에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다행히 닷새 만에 병원에서 깨어났지만 진씨는 모두 6400만원을 날렸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는 2010년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진씨 등 영세상인 1100여 명을 상대로 4년여간 37억여원을 뜯어낸 혐의(사기)로 기획자 김모(28)씨 등 보이스피싱 조직원 9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8일 밝혔다.

이들은 2010년 9월~올 7월 인터넷 생활정보지 등에 점포 양도 광고를 올린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접근해 인터넷 부동산중개업체를 사칭해 광고비·경매수수료·공탁금 등 명목으로 돋을 뜯어냈다. 김씨는 피해자에게 뜯은 1억 8000만원으로 외제차까지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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