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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달맞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름 있는 날이란 원래 유감한 법이지만 한가위 같이 가슴에 스며드는 명절도 없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날이 되면 풍요한 가운데 우울함을 금할 수 없다. 옛일을 생각하고 잊어버렸던 고향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띠난 사람들을 추모하게되기 때문이다.
내 고향인 경상도에서는 설보다도 추석을 더 친다. 내가 소녀였을 때는 달 밝고 기후 좋은 한가위가 즐겁기만 했다.
이날이 되면 낮부터 동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키보다 더 자란 갈대와 청솔가지를 베어 놓고 달맞이 준비를 한다. 그리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일제히 달포를 놓는 것이다. 솔잎의 향긋한 냄새가 부연 연기를 타고 산 위에 자욱해지며 달은 온통 나 혼자를 위해 있는 듯 하다·그러나 지금은 그 같은 천진성은 없어졌다. 도시생활에는 고향의 그것 같은 정서도 없다.
매연에 생기 잃은 나무 그림자 너머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면 오늘의 달이 둥근 것을 기뻐하기 보다 내일이면 저 달이 기울기 시작할 것을 생각하고 쓸쓸해진다.
달은 차면 기운다. 인간의 영화도 짧다.
기쁜 날을 맞아 솔직히 기뻐하지 못하고 윤회하는 인생을 생각하고 윤회하는 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그만큼 세파에 시달렸기 때문일까.
그러나 한가위는 이렇듯 돌고돌아 그치지 아니하는 우유의 철칙이 어떻게 존엄하며 오묘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뜻에서 특히 의의 있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한가위는 기쁘다기보다 애수가 깃들인 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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