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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시작? 음반 재킷 뜯는 바로 그 순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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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호 08면

소리의 절대 미학을 추구하는 장인정신과 경계를 뛰어넘는 도전적 실험정신-. 1969년부터 독일에서 음반 레이블 ECM을 내놓고 있는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70)를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수식어다. ECM은 ‘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의 약자로, 동시대 음악을 향한 그의 관심이 농축돼 있다. 재즈 뮤지션 키스 재럿, 기타리스트 펫 매스니, 색소폰 연주가 얀 가바렉의 흥취가 듬뿍 담긴 명반부터 클래식·민속음악·현대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이 그 속에 있다. 이런 음악적 풍경을 독특한 이미지로 함축해낸 앨범 재킷 역시 ECM의 트레이드 마크다.

독일 명품 음반 레이블 ECM 설립자, 만프레드 아이허

‘귀를 눈처럼(Think of Your Ears as Eyes)’이라는 모토로 순도 높은 음악 세계를 추구해온 그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아시아 최초 전시인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8월 31일~11월 3일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와 영화제 ‘ECM과 장 뤽 고다르’(8월 31일~9월 8일 서울아트시네마), 콘서트(9월 3~7일 예술의전당) 등 ECM ‘3종 세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소리의 장인이 추구하는 음악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전시 현장에서 만난 만프레드 아이허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기자 간담회에 앞서 전시장 투어가 시작됐다. ‘경험’은 지하 4층부터 시작된다. 하늘하늘한 천들의 장막을 뚫고 울려퍼지는 빛과 소리가 축복의 세례처럼 관람객에게 뿌려지는 인트로 존을 지나면 가지런히 서 있는 18개의 사람 키만 한 큐빅 설치물이 보인다. 설치물 안으로 들어가 큐빅 속으로 머리를 쏙 집어넣으면 ECM을 대표하는 앨범들의 대표곡이 흘러나온다.

아이허가 키스 재럿과 탁구 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보며 걷다 보면 라운지가 나온다. 3개 층에 걸친 높은 공간감이 장쾌한 느낌을 준다. 1인용 소파에 편하게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놨다. 바람벽에는 1969년부터 올해까지 출시된 앨범 1400여 점이 연대순으로 붙어 있다. 마치 오디오 이퀄라이저처럼.

앨범 재킷에 쓰인 미술 작품과 악보, 장 뤽 고다르와의 영화 작업 관련 영상, 아티스트 사진 및 에피소드 소개 등이 2개 층에 걸쳐 이어졌다. 한국인 보컬로는 최초로 올해 ECM에서 음반을 출시한 신예원(32)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그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압권은 지하 2층에 마련된 음악감상실 ‘Ultimate Sound Room’. 어둠 속 B&W 풀 시스템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몸과 마음을 말끔하게 씻겨주는 듯했다. “낯선 음악을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 40년 역사를 관통한 예술과 철학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것이 비단 음악뿐 아니라 삶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전시를 기획한 김범상(41) 글린트 대표의 말이다.

공항에서 막 도착했다는 아이허가 형형한 눈빛으로 기자들을 둘러보는 가운데 간담회가 시작됐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어떤 음악을 찾고 있나.
“음악 안에는 시(詩)적인 요소가 있다. 작가의 퍼스널한 요소, 시적인 요소가 드러나는 음악에 주목한다.”

-ECM이 추구하는 것은.
“ECM은 예술을 창조하는 레이블이다. 우리는 소리의 투명성을 추구한다. 중요한 것은 독창성(Originality)이다. 서로 흉내내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지는 않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음악도 있나.
“기준은 없다. 나는 내가 탐구해 보고 싶은 음악을 한다.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탐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베토벤 등 고전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나.
“베토벤은 베토벤이다. 어떻게 달라지는가는 내가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아티스트와 프로듀서, 엔지니어가 합심해 만들어내는 화학적인 변화가 분명 있다. 어떤 순간에 어떤 사람과 작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이것은 영화감독과 배우의 관계와 같다. 감독이 어떤 배우를 써서 그 영화를 완성하느냐와 같은 얘기다.”

-거의 대부분의 음반을 프로듀싱했다. 실제 삶도 꼼꼼한가.
“일과 사생활이 그렇게 크게 다르진 않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바이올린을 선물해 주면서 나의 음악인생이 시작됐다. 그 뒤 콘트라베이스로 바꿨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이 내 삶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음원을 다운받는 시대다. 재킷이 있는 CD의 미래는.
“요즘은 너무 간편해져서 바로 음악만 듣는다. 처음부터 그런 경험만 갖게 된 사람은 그것(음악만 쏙 듣는 것)이 음악 감상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재킷을 보고 뜯어내는 순간부터 음악의 시작이다. 우리가 콘서트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음악의 경험이 시작되지 않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습하는 소리들, 웅성대는 객석, 무대의 공간감 등 이 모든 것이 음악의 경험이다. 내가 음반을 제작할 때 담아 내려는 것도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일부만 느낀다면 제작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책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단단한 느낌, 종이를 넘기는 느낌, 이 모든 것이 독서의 경험 아닌가. 단지 그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렇다면 음악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침착한 마음으로 천천히 인내심을 갖고 음악을 듣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 프로듀서로서 가장 큰 자질이 듣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나는 ‘듣기 예술’이 있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황우창이 만난 만프레드 아이허
ECM의 첫 타이틀은 말 왈드론의 재즈 앨범이다. 하지만 아이허는 이런 이유로 ECM이 재즈 레이블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만일 안드라스 쉬프나 기돈 크레머 혹은 사비나 야나투나 아누아르 브라힘의 앨범이 ECM의 첫 타이틀이 됐다면 어땠을까.

말 왈드론은 1967년 뮌헨을 방문해 공연했는데, 이 공연이 마음에 들었던 아이허는 왈드론을 만나 음반 계약을 한 뒤 2년 뒤 첫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후 새 아티스트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데모 테이프가 아니라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 연주 장면을 보고 결정한다고 했다.

초기 ECM이 재즈를 주로 소개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말 왈드론을 비롯해 계약한 아티스트들이 다시 친구를 소개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재즈계 아티스트들이 모이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재즈가 갖는 즉흥성과 다양성이 레이블의 초기 방향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사실 아이허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으며, ECM 레이블 설립 직전까지만 해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던 시절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담당했던 단원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은 재즈든 클래식이든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즉흥성을 포함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말 왈드론의 앨범 제목이 ‘마침내 자유로운(Free at Last)’이 된 이유다.

1970년대를 지나는 동안 그는 레이블의 음악 색채가 재즈라는 장르에 속박되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그 돌파구를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에서 찾은 아이허는 라이히·슈니트케·쿠르탁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컨템퍼러리’라는 레이블의 개념을 진화시켰다.

또 기돈 크레머나 킴 카쉬카쉬안, 안드라스 쉬프 등 클래식 전문 연주자들을 통해 베토벤과 슈만·브람스 등을 새롭게 해석해 냈다. 그렇게 1982년 이후 출시된 앨범들은 ‘뉴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ECM에서 다루는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악보를 사용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벌어지는 새로운 해석 행위”이며 “이렇게 재창조되는 것 역시 동시대 음악의 일부”라고 말한다.

아이허는 이런 이유로 정명훈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는데, 메시앙과 드뷔시·말러의 전문가인 그를 ECM으로 초빙해 그만이 갖고 있는 예술 세계를 레이블의 신념에 적용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만프레드 아이허는 스스로를 가리켜 아직도 배울 게 많은 학생이라고 했다. 또 음반 레이블 설립자가 아닌 그저 프로듀서로 불리기를 원했다. 자신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애써 강조했다. 그러면서 “음악을 좀 더 사랑한다면 음악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은 음악 장르 구분하기와 함께 월드뮤직이라는 단어를 극히 싫어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그는 월드뮤직 대신 ‘문화가 교류하는 음악’이라고 호칭했다. “전혀 다른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음악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나누고 교감하기 때문”이다.

또 ECM에서 음반을 발표했던 아티스들의 출신 지역에 따라 음악의 성질을 결정해서도 안 되고, 음악과 사람이 서로 존중하며 교감해야 하며, 아티스트와 대중이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악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서는 음악과 관련된 모든 문화의 형태, 이를테면 세계 각지의 전통 문화나 미술·영화 등 다양성을 함께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아이허가 들려준 문화와 예술의 폭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칠순 노인은 음악과 문화, 예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영화에 관한 지식과 애정은 각별했다.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를 예로 들며 “그가 만드는 사극이나 여러 작품 속에서는 동시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잘 표현돼 있다”고 목소리 끝을 살짝 높였다.

영화와 음악 등 모든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사례로 얀 가바렉과 힐리어드 앙상블이 발표한 ‘오피치움(Officium)’을 꼽았다. 스페인 세비야 성당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감동, 모랄레스의 ‘진혼 미사곡’을 들었을 때의 느낌,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제 7의 봉인’이 주는 심상, 마지막으로 얀 가바렉과 얽힌 일화까지 음반 ‘오피치움’에는 수많은 예술과 문화가 녹아 있다고 그는 들려주었다. 그 순간 나는 백발이 성성한 이 독일 노인의 눈빛에서 들뜨고 흥분한 소년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문화를 존중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의 신념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통찰이 있었다.

음악이든 문화든 사람이든, 존중과 존경은 한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일부러라도 피했던 ECM의 음악과 음반들을 이제 만프레드 아이허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다시 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단 ‘마침내 자유로운(Free at Last)’과 ‘오피치움(Officium)’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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