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습과 모방에 치우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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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실망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게 제 1회 대학 미전을 보고 난 솔직한 심정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든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대학생으로부터 무엇을 바란다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단 우리들 자신을 평가절하 해버리면 사실상 맥이 빠지는 것은 숨길 수 없다.
모든 예술의 일반적인 명제이지만 미술이 자기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작업이며 구체적으로 자기 시대의 정신이라는 것은「자기성 회로」를 통하여 민족의 상황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념도 바로 이러한 정신의 흐름을 포착하는데 있다. 아마 이점의 황폐함이 이번 미전의 치명적인 결함이 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결점은 결국 현재 대학 미술교육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 된다. 사실상 이번 대학생의 작품은 현역화단의 축소판이라고 할이 만큼 현역 화단과의 교착상태를 보였는데 그것은 대학이 현역 화단의 순화 작용이라는 바람직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탓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번 전람회에 나타난 대학미술의 공통된 관심이라는 것은 결국「기술의 답습」이나「전위양식의 모방」에 있다. 기왕에 우리들 자신을 평가 절하한 입장에서 말한다면 오히려 기술의 답습에 경주한다는 것은 착실한 작업이 된다. 왜냐하면 새 양식의 모방이라는 것은 한국 미술을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더 없는 암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점은 대학 미술이 참작할 일이다. 사실상 이번 서양화 부문의 서울대·홍대 경향의 추상이나 포의 모작들은 오히려 관람객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결합은 필자가 보기에는 서양 미술사의 흐름(정신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훈련이 미숙한 탓으로 간주된다.
아마 서양미술의 흐름을 올바르게 파악했다면 결코 그토록 허망한 모방에 정력을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소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희랍 조각과 근대 조각이 가지는 양식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했기 때문에 하나의 무차별적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비교적 나은 조건에서 출발하게 되어 있는 동양화마저도 기성 화단과의 교착상태 때문에 대학 미술다운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화와 마찬가지로 동양화에 있어서도 흐름의 파악과 절대에 대한 인식이 대학 미술 교육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박용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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