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하네요~ 480종류 단풍나무가 그려낼 가을 꽃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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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화담숲 안에는 모노레일이 다닌다. 수목원이 산비탈에 기대어 있어서다. 이끼원 입구에서.

세상에는 이런 수목원도 있다. 어디에 내놔도 모자랄 것 없는 수목원을 만들어 놓고는 입 꾹 다물고 모른 체하는 수목원이 있다. 슬그머니 문을 열어 제 발로 찾아오는 손님만 받고, 혹여 호들갑 떠는 꼴로 비칠까 싶어 세상에 알려지는 걸 조심하는 수목원이 있다. 하물며 그 수목원의 주인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잘난 척 으스대는 게 미덕인양 떠받들어지는 요즘에 이런 수목원이 있을까 싶지만, 정말로 있다. 곤지암화담숲. 이렇게 써놓고 보면 막상 수목원을 아는 사람도 헷갈린다. 하여 다시 설명한다. 곤지암리조트 안에 있는 수목원. 언론에선 도통 보기 힘든 수목원이지만, 3년 만에 25만 명이 다녀간 꽁꽁 숨은 명소다.

이야기를 나누는 곳 ‘화담숲’

두어 달쯤 전 수목원 운영을 담당하는 서브원 곤지암리조트의 박규석 대표이사를 만난 자리에서였다. 수목원을 알리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게,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우리나라의 어지간한 수목원은 다 가봤지만 이 정도면 자랑해도 됩니다. 천년 묵은 숲을 원하십니까?”

“돈 버는 게 목적이 아니어서요. 수목원은 자연생태계 복원과 보호를 위한 LG그룹 차원의 공익사업입니다. 그래서 자연환경 개선과 보호활동을 하는 사회복지법인 LG상록재단이 수목원의 주인입니다. 수목원이 리조트 부지에 있어 운영만 리조트가 맡았고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수목원을 찾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정확한 정보를 알릴 때가 아닐까요?”

박 대표는 “때가 되면 연락하겠다”며 허허 웃었다. 그리고 지난달 말 곤지암리조트에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고서 수목원 자료를 수집하다가 알았다. 수목원 이름이 ‘곤지암화담(和談)숲’이었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의 ‘화담’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호(雅號)다.

수련원에서 수련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 탐방객.

모노레일도 갖춘 스키장 안 수목원

곤지암화담숲은 곤지암리조트 안에 있다. 그러나 슬로프에 꽃을 심어 여름 장사를 하는 여느 스키장 꽃밭과 곤지암화담숲은 차원이 다르다. 정광산(563m)에서 내리뻗은 산자락에 스키 슬로프가 늘어서 있고, 슬로프 오른쪽 발이봉(해발 482m) 기슭에 수목원이 따로 들어앉아 있다. 해발 200~350m 옴폭 팬 기슭 안에 숨어있듯이 터를 잡아 수목원 정문에서도 안쪽이 잘 안 보인다. 그래도 면적은 16만㎡(약 5만 평)나 된다. 무슨 비밀의 숲 같다.

원래는 발이봉 일대 76만㎡(약 23만 평) 산자락을 수목원으로 꾸밀 작정이었으니, 수목원이 시방 미완성인 것은 맞다. 하나 사업 자체가 워낙 방대해 완공은 요원하다. 지금 개장해 있는 수목원은 25개 주제에 따라 식물 4300여 종 80만 본을 기르는 곳이다. 이미 곤지암화담숲은 규모나 식물 수에서 국내의 내로라하는 수목원에 버금간다.

곤지암화담숲은 2007년 조성을 시작해 2010년 6월부터 손님을 받았다. 처음에는 리조트 숙박객이 산책 삼아 수목원을 들렀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곤지암화담숲 표지숙 대리는 “주말에 2000명 가까이 수목원을 방문하는데 70%가 순수 방문자”라고 소개했다.

리조트 안에 수목원이 있어서 그런지, 수목원 가는 길이 별나다. 곤지암리조트 E/W빌리지 옆에서 리프트를 타거나, 리프트 아래를 흐르는 물길을 따라 걷거나 두 가지가 있다. 곤지암화담숲은 경사 가파른 기슭에 기대어 있어 어린이와 노약자가 꼭대기까지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30억원이나 들여 모노레일을 설치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다보는 수목원 전경이 아늑하다.

나비화원에 사는 호랑나비. 나비화원에서는 부화하는 나비를 볼 수 있다.

다슬기·도롱뇽 … 사람이 일군 생태계

곤지암화담숲이 자랑하는 장소가 두 개 있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이끼원과 국내 최대 품종을 보유한 단풍나무원이다.

단풍나무 480여 종이 있다는 단풍나무원은 계절이 일러 아직 본색을 느끼기 어려웠다. 대신 2000평 규모 산기슭에 이끼 30여 종을 키우는 이끼원은 인상에 남았다. 이렇게 큰 이끼원을 둔 수목원은 아직 기억에 없다. 이끼를 기르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다. 역시나 10년 넘게 바람·습도·빛 등 이끼의 생육조건을 맞추는 연구를 거듭했고 지표뿐 아니라 공중의 습도도 자동 조절한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그러나 곤지암화담숲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식물이 아니었다. 식물을 기본 축으로 삼은 자연생태계였다. 곤지암화담숲에는 야생 반딧불이가 살고 있었다. 하천에 다슬기가 살았고, 다슬기를 먹고 자란 반딧불이가 풀숲에서 빛을 밝혔다. 또 다른 하천에는 도룡뇽이 알을 낳았고, 호수에선 토종 거북이 남생이가 낮잠을 잤고, 원앙은 종종걸음으로 사람을 따라다녔다. 수목원이지만 수목원만은 아니었다.

“ 우리는 수목원을 예쁘게 가꿀 생각이 없습니다. 자연생태계와 최대한 가까운 환경을 복원하는 게 우리의 꿈입니다.”

곤지암리조트 석영한 전무의 설명이었다. ‘ 수목원 곳곳에는 안내판이 많았다. 수목원에 사는 꽃과 나무, 새를 소개하는 안내판은 전문적이면서도 친절했다. 나비화원에는 부화를 앞둔 나비 번데기가 매달려 있었다. 수목원의 작은 시설 하나하나가 석 전무의 설명으로 이해가 됐다.

●이용정보=서울시청에서 곤지암리조트는 61㎞ 거리다. 곤지암화담숲은 스키 시즌이 시작하는 11월 중순 문을 닫았다가 이듬해 4월께 다시 문을 연다. 오전 9시30분부터 경기도 광주 곤지암터미널에서 곤지암리조트까지 1시간마다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한다. 무료 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입장료 어른 8000원, 어린이 6000원. 리프트 1000원. 모노레일 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 031-8026-6666, konjiamarboretum.com.

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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