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살아난「사도」…낙도의 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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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덕적도=이양·박성순기자】서해안의 조그마한 섬 덕적도에 정을 붙여 일생을 이 섬에서 보내려했던 한 일본인 교장이 일본의 패전과 함께 수류탄을 터트려 자폭한지 25년만에 그 유골이 일본에 있는 동생의 손에 들어가자 동생은 현이 교장으로 있던 덕적도 국민학교를 위해 써 달라고 일화 3만원(한화 2만5천8백원)을 24일 중앙일보 동경지사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이 이야기는 25년 뒤에 다시 꽃을 피우고 있다.
주인공은 덕적 국민교 3대 교장이었던 청도양책씨(8·15 당시 39세)와 그의 동생 제도양이씨(57·일본 모고교 교감).
8·15때 덕적 국민교 교사였던 이환규씨(51·덕적어협 총무계장), 제자 이세분씨(여·40), 당시 덕적면장 송재순씨(60)등은『교육자의 양심과 섬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폭한 것 같다』면서 모범적인 교육자였고 마음착안 일본인이라고 그의 인격을 말해 주었다.
동경음악학교 출신인 청도씨는 서울일신과 인천 신흥국민교를 거쳐 42년 4월 덕적 국민교 교장에 부임했다.
지금 유명한 인천 신흥 국민학교의「브래스·밴드」는 청도씨가 재직 중에 창설,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덕적에서도 매년 수영대회를 열어 학생들의 수영실력을 등급을 정해 가르쳤다고 이환규씨는 말했다.
해방이 되면서 청도씨 부부는 당시 덕적도에 주문하고 있던 일본해군 중대와 함께 군함으로 철수하게 되어 있었다.
45년 8윌18일 밤 9시, 이들 부부는 군함에 오르기 직전 해안 모래밭에서 수류탄을 터뜨린 것이다.
청도씨는 또한 유서를 통해 자신의 소유물을 일일이 나누어주었다.
평소 애용했던「바이얼린」은 예복과 하께 태워달라는 부탁이었고 자전거는 공의에게, 이들은 학교 숙직실에서 쓰도록 세심히 배려했다.
청도 교장의 이야기는 66년 일본 문화인 단체대표 소견산등씨가 덕적도에 묻힌 일본군인들의 유골발굴을 위해 현지 조사를 나왔다가 듣고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지난 5월2일 유골발굴에 성공한 것이다.
전임 청도 교장의 동생으로부터 성금을 받은 황오주 교장(여·57·현 덕적교)은『학생들을 사랑했던 독도교장의 뜻을 받아 전교생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덕적 국민학교에는 교직원 7명과 2백46명의 학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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