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잔해탐사에 희망을 건다|최영희<국사편찬위원회 사무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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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에서 해사 조성도 교수에 의한 「거북선」건지기 작업에 관한 보도를 읽었다. 벗이며 동지인 서 교수의 끈질긴 노력과 이에 종사하고있는 해군장병의 노고를 다시 생각하며 꼭 일이 이루어지기를 격려하여야되겠다.
이 작업은 금년이 처음이 아니라 이미 작년에 조 교수에 의하여 칠천량에서 시행된바 있다.
그 결과는 금년작업에 관하여 중앙일보에 보도된바와 같이 해저에는 흙이 덮여 있고 그 층이 깊어서 유물을 발견하기란 힘들었다고 한다.
이 작업이 크게 보도된 것은 임진왜란을 연구하거나 관심이 큰 사람들에게는 흐뭇한 일이 될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당장 「거북선」을 우리가 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면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클지 모르는 일로서 조심스럽기 한이 없다.
필자는 1958년(사총의 구선고)에서 『만일 칠천량 해전에서 「거북선」이 침몰하였다는 추측이 옳은 것이며 아직도 구선이 그 위치에서 원상을 유지하고 있다면 깊이 6∼7m의 칠천량 해협의 해저를 조사하면 구선의 철갑문제를 해결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으나 그후 좀더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되었고 또한 「거북선 찾기 운동」운운하는 보도에는 질색을 한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 칠천량에서의 해저탐색도 꼭 「거북선」을 찾아 내자는 일이 아니고 보도된바와 같이 임란해전의 유물을 찾기 위한 작업으로 안다.
「거북선」이 일본수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되었다는 것을 실증할 기록은 없다. 다만 문헌고증만으로는 임란초기에 「거북선」이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였으나 그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난 후에 「거북선」의 건조라든가 전투함으로서의 성능에 대한 평이 나올 뿐이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계속 전투함으로 하였고 후임자인 원균 장군이 이를 이어 받았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며 한편 칠천량에서 우리 수군이 거의 전멸하였고 이순신 장군이 재기용된 후 저 유명한 명량해전에서는 「거북선」이 없었으므로 칠천량 해전에서 「거북선」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 하여도 곧 칠천량에서 「거북선」이 침몰되었다는 것이 안된다. 칠천량 해전에 관하여서는 승자인 일본측 기록도 정확한 것이 못되며 추상적이나 과장된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수군에 관한 기록으로서는 그 당시 선전관이었고 칠천량에서 일본수군의 기습을 받고 원균이 전사할 때까지 행동을 같이 한 김식의 계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믿어진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 수군은 칠천량에서 7월 15일 이경에 왜선 5, 6척의 기습을 받고 우리 전선 4척이 소몰하였으며 계명에 일본 수군의 총공격을 받아(일본측 기록과 비교하여 맞음) 우리 수군은 일본수군과 싸우면서 후퇴하여 추원포로 퇴둔하였으나 이곳에서 「아국전선 전피소몰」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원균도 전사하였다. 그러므로 칠천량 해전 전까지 「거북선」이 침몰하였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며 추원포의 위치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임란 해전의 전적지는 대부분이 해안이다. 만이 있기 때문에 연대는 얼마 안되지만 해저는 깊은 층의 흙이 덮여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 예로서 직접적인 해류의 영향을 받지않아 격침된 일본전선이 원위치에 침몰되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당항포만하여도 옛 해전터에는 지금은 해초가 해면에서 넘실거릴 정도이다.
임란해전의 수중유물 건지기에 대하여는 이미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여 일본 모신문사에서는 정식으로 협동작업을 제시한 바가 있었고 또 근자의 소식으로서는 미국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작업은 곧 성과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끈기있게 장기간 치밀한 작업으로써만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성급한 「거북선」찾기보다도 당시 침몰된 일본 전함이나 화포류 등 무기에 일차적 목적을 두고 탐색하는 것이 용이하고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길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나라에는 수중고고학의 경험이 없고 임란해전 중 각처에서 일본전선이 침몰되었는데 그곳은 대부분이 해안의 수심이 얕고 조류의 영향이 적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당항포 해전은 외해에서 약 10㎞나되는 내만에서의 해전이므로 가장해저의 유물이 유실되지 않았으리라고 믿어지는 곳이다.
하여간 장기간의 작업으로써 이번 작업이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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