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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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고 무조건 항복을 하기까지에는 여러가지 곡절과 파란이 있었으나 그중에도 소위 천황제가 유지되느냐, 아니 되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일본의 군국주의자와 지배계급들은 「포츠담」선언에는 다만 『일본의 정치형태는 장래 일본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서 결정될 것임』이라고 밖에 씌어있지 않으므로 무조건 항복을 한다면 필시 천황제를 없앨 것이라고 하여 맹렬히 반대를 한 것인데 「히로시마」(광도) 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소련이 참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소련은 일본을 점령하던 당초부터 문제를 일으켜서 천황제를 없애는 것은 물론 소련군으로 하여금 북해도를 점령케 하여 결국 일본을 둘로 나누자는 요구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소련군은 연합국 최고사령관의 지휘하에 두지를 말고 최고사령관의 권한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해야 된다고도 하였다.
연합국 최고사령관인 「맥아더」원수는 정면으로 그것을 거부했으나 소련대표 「테레비양코」장군은 격렬한 어조로 반드시 「맥아더」 원수를 최고사령관직에서 파면시키고야 말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후 「맥아더」원수가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소련군은 어쨌든 일본에 진주하겠노라고 위협하였다.
여기서 「맥아더」원수는 『만일 소련병이 단 한사람이라도 나의 허가 없이 일본에 온다면 「테레비양코」장군 자신을 포함한 소련 대표부의 전원을 즉시 체포하여 투옥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표시하니 그처럼 날뛰던 「테레비양코」도 다시는 더 말을 못하고 그 문제는 그 이상 발전이 되지 못했으나 「맥아더」 원수가 그같이 소련군의 일본진주를 반대하고 천황제를 그대로 존속시킨 데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었으니 그것은 일본 유인천황의 겸허한 인간성에 깊은 감명을 느낀 때문이었다. 「맥아더」원수는 그의 회상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동경에 도착하여 얼마되지 않았을 때 나의 막료들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천황을 총사령부로 호출함이 어떠냐고 강력히 권하였으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 일을 하면 일본의 국민감정을 유린하고 도리어 순교자로 만들 것이므로 기다리기로 하였다. 가만히 있으면 그가 자발적으로 찾아올 것이니까. 그랬더니 과연 천황이 미구해서 나를 찾아왔다. 「모닝·코트」에 「실크·해트」를 쓰고 궁내대신과 함께 온 것이다.
나는 한나라의 군주에 알맞게 정중하게 영접하였는데 천황은 침착하지를 못하고 그때까지의 여러 달 동안의 긴장을 명확하게 얼굴에 드러내놓고 있었다. 천황의 통역관 이외에는 전부 퇴석케 한 후 우리들은 영빈실 끝에 있는 난로 앞에 가 앉았다. 나는 미국제 궐련을 내미니까 천황은 고맙다면서 받았다. 그 귈련에 불을 붙여줄 때 나는 천황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천황이 혹은 전쟁 범죄자로서 기소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조르지나 않을까 하고 불안하게 생각하였다. 연합국의 일부, 더우기 소련과 영국에서는 천황을 전쟁범죄자에 포함시키라는 소리가 높았고 사실 그들이 제출한 최초외 전범 「리스트」에는 천황이 벽두에 적혀 있었다.
미국정부가 영국이나 소련 측 주장에 기울어지려고 할 때 나는 『만일 그런 일을 한다면 적어도 백만의 장병이 필요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천황을 전쟁범죄자로 기소하여 교수형에 처한다면 전 일본에 군정을 펴야할 것이요, 「게릴라」전이 시작 될 것은 틀림없다고 나는 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천황의 이름은 전범자 「리스트」에서 제외되었지만 그런 경위를 천황은 조금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천황의 입에서 맨 처음 나온 말은 뜻밖에도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일본국민이 전쟁을 함에 있어서 정치·군사 등 전 책임을 진자로서 나의 운명을 연합국측에 맡기기 위해서 온 것이다』라고 말할 뿐 단 한마디도 자기자신의 구명에 대해서는 언급함이 없었다.
나는 죽음을 각오한 그 엄숙하고도 용기있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고, 나의 눈앞에 있는 천황은 개인의 자격으로도 일본 최고의 신사임을 통감하였다…. >
그같이 전쟁범죄자를 면한 일본천황이 그후 『나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다』라는 소위 「인간선언」을 낸 것은 그때 「맥아더」 원수의 종용에 의한 것이라고 하거니와 이에 큰 충동을 받고 『나도 헛된 왕명을 버리고, 일개시민으로서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결심한 이가 또 한 분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영친왕 바로 그분이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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