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의 연애소설' 국내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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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사담 후세인(65) 이라크 대통령은 의외로 세 권의 소설을 펴낸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2000년 익명으로 출판됐으나, 아랍권에서는 후세인 대통령이 썼다고 널리 알려진 소설 '자비바와 왕'(원제:자비바와 알-말리크)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다.

이 책은 겉으로 봐선 로맨스 소설이다. 출간 이후 이라크내 언론매체의 대대적 홍보와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되고 텔레비전 연속극과 연극으로도 제작됐다.

하지만 그 속을 파보면 후세인의 정치.종교.국가관 등이 짙게 깔려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라크 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 후세인은 소설을 통해 자신의 통치철학을 이라크 국민과 세계에 알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는 후세인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후세인이 썼다고 하는 소설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랍어와 아랍문학을 전공한 6명의 공동 번역자 가운데 한 명인 안현주(아랍어 국제회의 통역사)씨는 "소설 '자비바와 왕'은 구성이나 문체, 표현을 비롯한 문학적 기본 요소는 상당히 부실하다"고 일단 전제하면서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히 독재를 미화하며 후세인의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과연 이 소설을 후세인이 직접 썼을까? 이에 대해 안씨는 "후세인이 직접 썼는지 아니면 다른 작가가 집필을 하고 후세인이 내용의 방향과 구성에 관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면서 "이라크 언론의 대대적 홍보와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후세인의 입김이 상당히 들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의 배경은 왕조시대다. 한 왕이 '자비바'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자비바와 왕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후세인의 육성은 자비바의 입을 통해 표현된다. 자비바가 정치.사회.종교.여성 문제 등에 관해 왕에게 하는 조언을 통해 후세인은 자신의 생각을 이라크 국민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은 소설을 통해 자신의 이념에 반하는 세력을 비판한다. 자비바와 소원한 관계에 있는 자비바의 남편은 이라크에 적대적인 서방세력과 일부 아랍국가를 상징하는 식이다.

다른 인물로 변장한 남편이 자비바를 강간하는 1월 17일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 등 연합군의 공격(걸프전)이 시작됐던 날이기도 하다.

"모든 겁쟁이들, 앞잡이들을 쫓아내라. 우리는 오직 알라 앞에서만 무릎을 꿇으며… 남자가 여자를 유린하는 것이나, 침략군이 나라를 유린하는 경우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권리를 유린하는 것, 모두 너무나 잔혹한 일이다"와 같은 구절에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선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압박과 억압이여 그 자리에서 멈추어 물러가라. 여기는 선지자와 예언자의 땅이다!"와 같은 구절에서는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내비친다.

이 소설의 번역에는 배혜경.이동은.박재양.최진영(이상 한국외국어대).장세원(명지대) 교수가 함께 참여했다. 아랍 관련 전문출판을 표방한 '우리와 중동'출판사에서 이달 말 펴낼 예정이다. 후세인이 썼다고 알려진 또 다른 소설로는 '철옹성'과 '인간과 도시'가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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