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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할거하는 평원의 이색 동물들|김찬삼 여행기<호주서 제8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중부평원을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멎었을 때였다. 풀이 우거진 곳에 행여 짐승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고 가보았더니 한길이나 되는 큰 「캥거루」 한 쌍이 새끼를 데리고 풀을 뜯어 먹고있었다. 뒤에서 몰래 다가서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건만 의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이 식사를 하고있는 것을 차마 붙들 수 없었다.
이 대륙에 사는 야수라고는 7천년전인가 원주민이 딴 대륙에서 데리고 온 개가 야성화 되었다는 「딩고」라는 사나운 짐승뿐인데 이 짐승이 간혹 「캥거루」를 해친다고 하지만 피해는 극히 적으며 「캥거루」를 위협하는 것은 백인들과 흑인인 원주민들의 사냥일 것이다. 그러니 황인종인 나까지 이들에게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일행중 한 백인여성이「미스터 김」하고 부르며 다가왔다. 내가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더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다가 내가 지켜보고 있던「캥거루」를 보자 날쌔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캥거루」 일가족은 어느새 껑충껑충 뛰며 달아나 버렸다. 그 여성은 분하다는 듯이 『아이 속상해』하며 발을 굴렸다. 그리고는 『「미스터 김」 그 「캥거루」를 얼빠지게 바라다보고만 있단 말이예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을 텐데』했다.
과연 「유럽」 사람다운 기질이었다. 『「캥거루」를 붙들려는 것보다는 장님놀이로서 수컷 뒤에 가서 손으로 눈을 가리면 어떻게 할까하는 「유머러스」한 생각을 해보았어요』 했더니, 그 여성은 깔깔 웃으며 『왜 하필 수컷을 희롱해요! 암컷을 붙들어 수컷의 이성애나 부부애가 얼마나 강한지 시험해 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텐데...』 하는 매우 「로맨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사로잡지 않고 그들의 사랑의 생리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들을 괴롭힐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뜻을 비추었더니 그 여성은 『한국사람은 그렇게 소극적인가요?』 했다. 인도적이라고 찬양은 못해줄망정 소극적이라고 하는 것은 아쉬웠으나 진취적이며 정복적인 「유럽」 여성이고 보니 나를 나무라는 것도 그럴법했다.
「버스」를 다시 타고 우리 일행은 이 대륙의 서쪽으로 달렸다. 서부지대에 이르렀을 때 들에서 백인 젊은이들이 「캥거루」사냥을 하고 있었다. 엽총을 쓰지 않고 「캥거루」가 지칠 때까지 「지프」로 쫓아다니다가 차에서 냉큼 내려 굵고도 긴 꼬리를 붙들어 잡는 것이었다. 잔인하기도 하지만 매우 「드릴」이 있어 보였다. 이 사냥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건넸더니 낮선 나라 사람이라고 반기면서 『오늘 이 「캥거루」 꼬리로 만든 「수프」를 만들어 대접하리다. 진미이니까요』 하며 만찬회를 베풀겠다고 했다.
모처럼의 대접을 뿌리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대륙을 여행하면서 「캥거루」 요리를 먹어보지 못하는 것도 안될 말이다.
나의 위장은 「세계음식의 소화기」라고 자처하는 터이다.
「뉴기니아」섬이며「솔로몬」군도의 식인종 마을에서 별의별 고기를 다 먹어보기도 했는데, 비록 어진 「캥거루」 고기를 먹는 것이 안되기는 했지만 한술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꼬리곰탕」에 견줄 수는 없지만 별미이긴 했다. 그런데 이 서부지대에서는 이 「캥거루」 꼬리의 「수프」를 즐기기 때문에 「캥거루」를 많이 잡아 처치하기가 곤란하면 꼬리만 잘라 가지고 온다고 한다.
이 서부지대에서는 타조의 한 종류인 「에뮤」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아프리카」 타조보다 조금 작았다. 우리 「버스」일행은 내려서 껑충껑충 뛰는 이 호주 타조를 구경해 보기도 했다.
한 쌍의 「에뮤」가 숲 속에 보이기에 그 곳으로 가 보았더니 놀랍게도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깔린 마른 풀 위에 매우 아름다운 초록색의 커다란 알들이 있었다.
한 호주 사람은 이것이 바로 「에뮤」의 알인데 크고도 껍질이 두꺼워 표면에다 조각까지 하여 장식품으로 쓴다고 한다. 크기는 길이 13cm 지름이 10cm 가량이다. 우리 일행 때문에 어미는 알을 버리고 뺑소니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에뮤」는 암컷이 알을 까지 않고 수컷이 대신 품고 깐다고 한다. 이 「에뮤」는 암컷의 모성애보다는 수컷의 부성애가 크기 때문일까. 새삼스럽게 창조의 다양성을 느꼈다.
더구나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초원을 이 「에뮤」들이 떼를 지어 뛰는 모습은 무한한 생명의 기쁨을 느끼게 했다.
「쇼펜하워」의 말대로 이 우주는 고스란히 삶의 의지로 충만해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에게는 삶의 의지가 고통일는지는 모르나 자연계에서는 그대로 행복의 표상으로만 느껴졌다. 황혼이 깃들이고 어둠 속에 「에뮤」의 무리들이 지평선 너머로 달리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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