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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안동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베틀 놓세 베틀 놓아
옥난간에 베틀 놓세
베틀다리 네 다리요
이내다리 두다리라‥…….』
경북 안동지방의 아낙네들은 대대로 이 노래를 베틀가에서 귀담아 익혀왔다. 올이 가늘고 치자빛 색깔이 고운 안동포는 『여인의 손톱과 침으로 만들어진다』고 할만큼 길쌈솜씨가 품질을 으뜸 나게 했다. 그래서 안동여인은 타고난 직녀인가. 삼베틀 가에 여인의 노래가 따랐다. 깔깔한 촉감의 안동포는 삼복더위 속에서도 땀에 배지 않고 바람을 들이킨다. 바탕이 거칠고 살을 베는 듯한 강원포와는 여름철 옷감으로 비할 바 아니란다.
안동포는 삼국시대부터 이름이 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가까이는 이조왕실에서 내내 안동포로 삼복을 지냈으며 안동부사는 그 때문에 초여름부터 삼베 짜기를 독려, 보름세(l5세포) 특상품을 골라 궁중에 진상했다고 한다.
보리타작을 끝낸 8월 초순부터 집집마다 삼을 베어 삶는다. 삶은 삼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무릎을 고추 세우고 앉아 손목으로 껍질을 벗겨 실을 만든 다음 올의 양끝에 침을 묻혀 무릎 위에 놓고 손바닥으로 비벼 잇는다. 이때 얼마나 가늘고 곱게 찢는가에 따라 삼베의 품질이 결정된다. 안동포는 여섯세(6세포)에서 보름세(15세포)까지 10등급으로 곱기가 나뉜다. 1세는 80올, 6세포라면 폭 32cm에 삼을 4백 80개가 들어가 1cm당 15개가 든 거친 삼베이다.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보름세는 1천 2백 올이 든 바탕이 곱고 쫀쫀한 극상품. 요즘은 12세포를 최상품으로 친다.
안동군 남후면의 수상·수하·계곡동, 임하면의 금소·고곡부락, 서후면의 저전·이송천 등이 안동포의 대표적인 산지. 2백 13호가 들어앉은 저전마을에는 지금도 집집마다 베틀을 놓고있다.
이 동네에서만 1년에 약 8백 필을 생산하고 있다. 이 마을 권봉희씨(여·42)는 올해 들어 3필 째 7세포를 베틀에 걸어놓았다. 한 필의 삼을 삼는데 약 20일, 짜는데 10일이 걸린다. 한 필에 3천 7백원으로 장사꾼에게 넘겨주면 권씨의 하루벌이는 1백 20원 꼴. 품삯도 나오지 않지만 현금 1만원쯤을 만들어야 두 아이 학비와 비료값 등을 줄 수 있단다. 「나일론」이란 화학섬유가 이 땅에 상륙하기 전만 해도 안동포는 연평균 10만 필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질기고 손질하기 편한 각종 화학섬유가 판을 치면서부터 안동포는 사양길에 들어 생산량도 격감되었다.
안동군의 작년도 집계에 따르면 2만 7천 1백호의 농가가운데 4천 6백 75호에서 2만 3천 4백필이 생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안동군은 67년부터 남후면 수상·수하동에 개량 안동포 주산 단지를 꾸며 기능공을 양성하고 베틀을 개량하여 생산능력을 높이는 등 개량포의 생산을 적극 권장했다. 68년 개량포 1만 4천필을 생산하여 82만 3천원 어치를 일본에 처녀 수출했으나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는 것. 이제는 눈이 어둡고 손이 떨려 길쌈을 하지 못한다는 서서남 할머니 (70)는 『읍내 처녀들이 아랫도리를 드러내놓는 옷을 입고 다닌다니 세상은 얄궂게 되었다』고 개탄하면서 옛날 새 각시 얘기를 들려주었다. 새 각시가 시집을 가 한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여름 친정 나들이를 할 때 삼 보따리를 가져간다. 여름 석 달 동안 삼을 삼아 9세포 3필을 짠다. 손톱이 다 닳고 무릎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길쌈을 하다보면 새 각시 눈에는 졸음이 찾아든다.
『잠이 오네 잠이 오네
샛별 같은 이내 눈에
구름 같은 잠이 오네.』
가난을 미워하지 않고 인종을 미덕으로 삼던 새 각시도 나이가 들면 사랑하는 딸이 길쌈을 하고 베틀에 앉는 것을 대견스레 여긴다. 이렇게 하여 안동포는 가느다란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나 입으로 전하던 베틀노래는 차차 잊혀가고 있다.
글·김재혁 기자
사진·김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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