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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자유화의 방패…스탈린 망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흐루시초프가 레닌과 나란히 묻혔던 무덤에서 스탈린을 밀어낸지도 10년, 한때는 소련인 들의 악몽 속으로 사라질 듯 하던 그의 망령이 64년의 흐루시초프 실각과 함께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 와서는 소련 집권설의 체제 유지 상의 필요에 따라서인지 완전히 그 권위를 찾기 시작했다.
지난 7월초 모스크바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해방』 이라는 영화에서는 스탈린을 2차 대전의 영웅으로 떠받들었는가 하면 6월25일에는 그의 묘지 위에 흉상이 제막됐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으례 따르는 요란한 행사는 없었지만 모스크바의 서방 관측통들은 이에 대해 거의 일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즉 스탈린의 부활이 스탈린주의의 재등장이나 「네오·스탈린」주의의 빈도를 뜻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흉상이 주는 심리적 압박감을 소련 지도층이 노리고 있다는 견해이다.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 소련에 급격히 번져 간 「자유화」의 물결은 「브레즈네프」의 3두 체제가 등장한 이후 고개를 숙였으나 대신 지하로 숨어 거의 공공연히 소련 체제의 모순을 낱낱이 비판, 공격하고 있어 지도층은 현 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 들여왔다.
65년 소련 지도층을 비판한 작품을 국외로 반출, 서방 세계에서 출판했다가 시베리아로 유형된 작가 시냐프스키와 다니엘의 탄압으로 시작된 소련의 강압 정책은 70년에 들어서면서 그 절정에 이른 느낌을 주고 있다. 지난 5월의 모스크바 발 외신은 소련 비밀 경찰 (KGB)이 반정부 이단파 학생과 지식층을 무더기 구속하여 재판에 넘겼거나 정신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소련에서 체포된 인사는 수백 명을 넘고 있다.
소련 정부가 최근에 와서 이처럼 탄압을 강화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69년 여류 시인 니탈리아 등 46명의 지식인이 소련 국내의 지성과 인권 유린을 유엔에 진정하는 탄원서를 보낸 데 대해 자극을 받은 것으로 모스크바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소련 정부가 지식인들의 요구를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두드러진 예로는 저명한 유전 학자 매드베데프의 박해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스탈린 시대에 유전 학설을 공산주의 이론에 맞도록 왜곡시킨 뤼센코의 어용 학설을 비판한 뒤 정신 병원에 수용됐다가 최근 석방됐다가 그의 석방도 소련 수소 폭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안드레이·사하로프」를 비롯한 일급 지식인들의 빗발치듯한 항의에 마지못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밖에도 최근 모스크바에서 19세의 고등학교 학생인 「발레리안」양이 소련 의회에 풍속 시를 보냈다가 정신 병원으로 보내졌다. 당에 대해 『노예화와 거짓말, 이중 생활과 반역』 을 가져다 준데 대해 감사한다는 풍자였다.
정부의 이러한 탄압은 물론 공식적으로 보도되지는 않는다. 68년부터 지하에서 간행되고있는 「사미즈다르」라는 회람 신문에서 소련 집권설의 내막이 폭로되고 있다.
지금까지 13호째 나오고 있는 이 신문은 물론 당국에서 관련자를 찾아내기에 혈안이 되고 있지만 손에서 손을 거쳐 복사되면서 다 닳아빠지도록 읽히고 있다.
지하 운동에 관계하고 있는 인사들의 주장도 가지각색이다. 이들은 대략 세 분류로 나뉘는데 『현 체제의 개선』, 『「레닌」 주의 시대의 유산에 대한 거부』, 『복수 정당의 실현』등을 주장하는 인사들로 대별된다. 물론 이들은 자기네의 주장을 실현성이 희박한 꿈으로 들리고 있지만 『애국적인 전쟁』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최근 「카르코프」시의 어느 공장 기사가 제정 러시아 시대의 압정에 항거한 애국 지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가 3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은 일은 소련에 번져 가고 있는 반체제 운동의 방향을 잘 암시하고 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조국을 사랑하라고 배운 적은 없다. 진실을 뚜렷이 알고 있는 것이 조국에 봉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독·디·차이트 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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