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난 ‘무한도전’을 보련다 이젠 가족이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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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호 21면

MBC ‘무한도전’(이하 무도)은 또 위기에 처한 것일까. “무도는 역시 ‘무모한 도전’ 시절의 몸개그가 최고”라던 육체파 근본주의 팬들의 목소리는 ‘여름 예능학교’나 ‘웃겨야 산다’에서 쑥 들어가고 이제 ‘맥락 없는 몸개그’를 비난한다. ‘무도 가요제’나 ‘못친소’ 등 게스트 특집의 큰 즐거움을 기억했던 사람들도 ‘여름 예능학교’나 ‘무도를 부탁해’에서 게스트들이 본질적인 웃음을 만들어내지 못하자 “역시 무도는 멤버들끼리 해야 된다” “멤버들 회의하는 모습만 한 시간 내내 담아도 이보다는 재미있다”며 시치미 뚝 떼고 진골 멤버 찬양파로 돌아선다. 매주 재미있었냐 없었냐를 놓고 댓글 논쟁이 벌어지는 무한도전이지만 ‘디시 인사이드’나 ‘오늘의 유머’ 등 탄탄한 무도팬들 커뮤니티의 요즘 분위기는 확실히 예전 같지 않고 ‘무한도전 비판 게시판’까지 등장할 정도다.

컬처#: ‘무한도전’ 또 위기설?

7, 8월 두 달 동안 힘이 빠져 보이긴 했다. 수시로 무도 팬들을 한마음으로 집결시키던 ‘몸개그’ 위주 특집은 정준하·정형돈의 부상으로 맘껏 몸을 던지기가 힘든 상황이었고 시청자들 역시 왠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봐야 했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멤버들은 이제 대한민국 예능판을 좌지우지하는 대스타로 커버렸다. 그들이 단지 ‘초심’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는 이유만으로 몸을 던지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는 것은 어쩐지 무도의 핵심이었던 발랄한 동심이나 자유로운 영혼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의무감에 시달리는 노동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혹시 “자 이제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라는 것이 이전의 멤버들이 가진 마음가짐이었다면 어느새 “자 이제 일하러 가야지” 하는 것으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새로움’와 ‘무한한 도전’이 있었던 무도는 진짜 쇠퇴의 길로 접어든 것일까.

하지만 재미없었다던 ‘무도를 부탁해’의 작은 순간은 변덕스럽기만 한 무도팬의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시청자 PD로 나선 열두 살 이예준군의 “무모한 도전 같은 몸개그가 재미있다”는 말에 유재석이 “무모한 도전을 봤느냐”고 묻자 “그땐 어려서 보진 않았지만 들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 어린 소년에게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말로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시간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것을 발판 삼아 소년이 야무지게 꿈을 키워올 8년의 시간 동안 무한도전이 우리와 함께 했구나 하는 뭉클함이 전해졌다.

그 시간 동안 쌓아올린 ‘또 하나의 가족’ 같은 독특한 연대감이 무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아마도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위기설과 불만은 진짜 가족에게 흔히 느끼는 유난한 기대와 쉽게 터뜨려 버리는 애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재방송으로 ‘무한도전 위기설’을 토론 특집으로 다룬 에피소드를 보니 지금은 ‘레전드’가 된 봅슬레이 편이나 레슬링 특집이 나온 뒤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지금은 올해의 레전드로 꼽히던 ‘무한 상사 뮤지컬’이 나온 지 두 달도 안 된 때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무한도전 게시판에 누군가 그림과 글을 올리자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무한도전 로고를 변형해 “그동안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이미지와 “이날을 상상해 보라”는 자막을 적어놓았다. 재미있다 없다 논란을 벌이던 사용자들은 하나같이 “그날은 상상도 하기 싫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며 일제히 숙연해졌다.

아직까지는 무도가 재미없어지는 것이 위기라기보다는 무도가 사라지는 공포가 더 큰 위기로 보인다. ‘무한도전 설국열차’에 가끔 ‘꼬리칸 양갱’급 에피소드가 나와도 ‘머리칸 스테이크’의 기대와 기억을 되살리며 열차가 폭파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이유다. 무한도전 역시 멤버들이 클 대로 커버려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들고, 추격전에서 지치도록 달리기에는 나이 들어 버렸고, 웬만한 도전은 다 해버려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어도 마음을 다잡고 또 한번 새로워져야 하는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쇠퇴와 위기의 혐의를 팬들의 변덕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들의 무모한 애정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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