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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와 LTE합작사 설립 … “개도국 시장 여는 시금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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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호 23면

KT와 르완다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 4G LTE 합작회사 설립 양해각서(MOU) 체결식 모습. 왼쪽 둘째부터 김홍진 KT G&E사장, 장 필버트 응센기마나 르완다 청년ICT부 장관, 황순택 주 르완다 대사. [사진 KT]

KT가 아프리카 통신 서비스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지난 6월 르완다 정부와 4G LTE(롱텀에볼루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올 하반기 중 법인 설립 작업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Biz Report 아프리카 시장 진출 본격화하는 KT

LTE를 이용해 음성 통신은 물론 인터넷을 르완다 전국에 설치하고, 교육·의료·금융 등 여러 서비스와 결합하는 사업이다. 이를 아프리카의 ICT(정보통신기술) 진출 허브로 삼겠다는 것이 KT의 전략이다. 이번 사업은 단순 통신 사업자가 아니라 르완다 정부와 합작 법인을 설립해 국가 기간망을 운영하는 새로운 사업자 모델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KT는 르완다 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국가는 물론 중남미 등 저개발 국가에 새 사업 방식을 확대할 예정이다. 2015년까지 그룹 매출 목표의 10%(3조9000억원)를 해외에서 거두려는 KT의 시도가 성공할지 주목된다.

동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10여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동통신·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하는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여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진출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는 많지 않다. 양승우 삼성증권 통신서비스 담당 애널리스트는 “어느 나라건 통신사가 해외로 진출하는 게 쉽지 않다. 이해관계자가 많고 투자 규모도 크다. 게다가 허가권을 가진 정부와의 관계도 또 하나의 변수”라고 말했다. KT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신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현지 정부의 인가를 얻지 못해 실패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KT가 아프리카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르완다를 선택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폴 카가메 대통령이 2000년 취임한 뒤 르완다는 정치 안정 속에 경제가 발전하는 중이다.

르완다의 지정학적 위치도 관심을 끈다. KT그룹 코퍼레이트 센터장 김일영 사장은 “르완다는 브룬디·케냐·탄자니아·우간다와 함께 동아프리카공동체(EAC)를 구성하는 5개국 중 하나다. 이들 나라를 합치면 면적 180만㎢, 인구 1억3000만 명이다. 르완다 자체는 작은 나라지만 밀접하게 연결된 동아프리카 시장으로 열린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르완다 정부는 2020년까지 중진국 수준으로 진입하겠다는 ‘비전2020’ 계획을 추진 중이다. 경제는 물론 사회통합과 교육·산업 발전을 망라하는 경제사회발전 계획이다. 문제는 경제 분야다. 국가 규모 등으로 볼 때 한국과 같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는 불가능하다. 폴 카가메 대통령은 초고속통신망(브로드밴드)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카가메 대통령은 개도국의 정보통신망 보급을 관장하는 국제기구인 유엔 브로드밴드 위원회의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KT 이석채 회장도 지난 6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 위원회의 커미셔너로 선정돼 두 사람의 인연이 합작 사업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카가메 대통령은 브로드밴드가 르완다처럼 인프라가 부족한 저개발 국가의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르완다가 동부·남부 아프리카의 정보통신기술(ICT) 허브가 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미 2300㎞에 이르는 광통신 기간망(백본)을 건설했다. 르완다의 경제 규모에 비해서는 엄청난 투자다.

르완다 기술진이 현지 기지국 철탑 위에서 휴대전화의 통신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석채 회장, ‘르완다 모델’ 개도국 전파
“한국 식당 같은 게 있을 리 없죠. 현지 식당에 갔는데 바퀴벌레가 사방에 득실득실해 기겁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는 벌레를 손으로 익숙하게 쫓아내며 식사를 하곤 했지요.”

초기 르완다 사업을 개척했던 KT 이재우 매니저의 회고다. KT가 르완다에 첫 진출한 때는 2007년. 처음엔 우리 정부의 대외 원조 자금을 바탕으로 현지에 와이브로망을 건설하고 운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아프리카 시장 진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의식주 같은 기본 인프라도 열악했고, 현지 관행에 익숙하지 않아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사람끼리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재우 매니저는 “정부 고위 관계자와 도무지 약속이 안 잡혀 무작정 사무실과 집으로 찾아가 문 앞에서 기다리기를 며칠이나 반복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정부 관계자는 현지에서는 흔치 않은 동양인의 의지와 열정에 감동해 만남을 허락했고, 이후부터는 상당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KT는 르완다 사업을 꾸준히 지속해 왔다. 52억원 규모의 와이브로망 구축에서 시작된 현지 사업은 광케이블망 구축, 국가 기간망 구축, 정보보안 사업 등 연간 수백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완성된 르완다의 국가 기간망이 수요 부족이라는 벽에 부닥친 것이 문제였다. 해결책은 데이터 기반의 고속 무선통신 기술인 LTE였다.

KT G&E 부문장 김홍진 사장은 “음성 중심의 과거 이동통신 기술과 달리 LTE는 데이터 기반이어서 르완다 소비자는 전화선이나 광통신 같은 중간 단계를 모두 건너뛰어 무선통신으로만 인터넷·데이터·음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KT는 이를 위해 르완다 정부에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안했다. KT가 LTE 기지국과 관련 장비·운영기술을 제공하고, 르완다 정부는 국가 자산인 기간망과 주파수를 25년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합작회사를 만든 것이다.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힘을 합친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방식이다. 사업권을 받은 KT는 현지 이동통신사나 인터넷 회사에 회선 이용권을 일종의 ‘도매’로 팔기 때문에 이를 ‘LTE 홀세일(Wholesale)’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지 통신사나 인터넷 회사는 자신들이 직접 기지국과 같은 인프라를 만들 때보다도 훨씬 싼 값에 회선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이다. 김 사장은 “르완다처럼 작은 국가에서 이동통신과 인터넷 수요가 생길 때까지 국민소득이 늘어나는 데는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며 “사업성을 위협하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자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KT는 르완다와의 사업 모델을 인근 국가로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21일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브로드밴드 위원회 8차 회의에 이석채 회장이 참석해 공동의장인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와 함께 이 사업 모델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다. 내달 말 르완다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변화 정상회의(Transform Africa Summit,TAS)’에도 이 회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회의는 10여 개 아프리카 정상이 모여 아프리카의 개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르완다 모델’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이 회장은 “인프라가 취약하고 산업화가 더딘 저개발국가도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지식기반 사회로 옮겨갈 수 있다는 ‘르완다 모델’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완다 모델’은 KT만의 사업에 그치는 게 아니다. 여타 중소기업과의 공동 사업도 추진 가능하다. 이 회장은 “한국은 통신 외에 게임이나 방송 등 콘텐트·물류·교육·의료·금융 등 브로드밴드를 통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경험했고 많은 성공 모델을 축적했다”며 “각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들과 KT가 함께 진출하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르완다식 모델은 국내 기업이 참여해 저개발국 정부가 적은 비용으로 정보사회의 이점을 누리게 할 수 있는 윈-윈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국내 통신회사들의 해외시장 진출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인 만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양승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어서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며 “통신 외에 게임·교육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함께 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라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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