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도덕적 시비 가리는 건 이성일까 정서일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8호 25면

정의는 이성에 의해 판단된다는 이론과 감성에 의해 느껴진다는 주장이 맞서 있다. 그림은 루카 지오다노(1634~1705)의 ‘정의’.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하버드대의 정치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는 2010년 5월 국내에 소개된 뒤 120만 부가 팔렸다. 샌델은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고 썼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정의와 부정, 옳고 그름에 관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고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기 위해 이 책을 많이 사본 것이라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는지.

이인식의 '과학은 살아 있다' <25> 도덕적 딜레마

“젊은 어머니인 당신은 불행히도 전쟁 중인 나라에 살고 있다. 당신은 적군 병사의 눈을 피해 아기를 데리고 이웃들과 함께 지하실에 숨어 있다. 겁에 질린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당신은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손으로 아기의 입을 막는다. 만일 당신이 손을 치우면 아기의 울음소리가 새어나가 그 소리를 들은 적군은 당신과 아기, 마을사람들을 찾아내 모두 총살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손을 치우지 않으면 아기는 숨이 막혀 죽게 될 테지만 당신은 물론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우는 아기 딜레마(crying baby dilemma)’다. 이런 도덕적 딜레마는 두 개의 도덕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발생한다. 하나는 아기를 질식사시키더라도 가능하면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영국의 도덕철학자인 제러미 벤담(1748~1832)이 주창한 공리주의의 입장이다. 벤담에 따르면 공리, 곧 유용성(utility)이란 행복이나 쾌락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는 옳은 행위다. 요컨대 벤담은 도덕적 행동이란 궁극적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기를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라고 여기는 원칙이다. 이는 독일의 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1724~1804)의 의무론적 입장이다. 칸트는 공리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는 도덕이란 행복의 극대화를 비롯한 어떤 목적과도 무관하며, 오로지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존중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흄의 묘지, 영국 에든버러. [사진 위키피디아]

근친상간이 부도덕한 이유 물었더니…
최대 다수의 행복보다 의무를 우선시하는 칸트는 사람들이 경험보다 이성에 입각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1781년 칸트가 57세에 펴낸 첫 번째 주요 저서인 『순수이성 비판』도 영국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1711~76)의 경험론에 도전한 책이다. 흄은 1739년에 펴낸 최초의 저서인 『인간 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에서 도덕적 판단은 이성이 아니라 정서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흄이 이성을 ‘열정의 노예(slave of passion)’ 라고 말할 정도로 공리주의자를 포함한 경험론자에게 이성은 전적으로 도구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흄의 주장은 이성에서 답을 찾는 칸트의 도덕철학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에서 칸트가 차지하고 있는 막강한 비중 때문에 정서가 도덕적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다시피 했다. 물론 19세기 후반에 일부 심리학자들이 플라톤 이래 이성을 앞세우고 정서를 무시하는 전통에 반기를 들긴 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다. 왜냐하면 1958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로런스 콜버그(1927~87)가 도덕 개발 단계에 관한 이론을 발표하면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도덕 철학에서 합리주의가 대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론을 제기한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버지니아대의 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다. 2001년 하이트는 계간 ‘심리학 평론(Psychological Review)’ 제4호(10월)에 발표한 논문 ‘정서적 개와 이성적 꼬리(The Emotional Dog and Its Rational Tail)’에서 도덕적 판단에 대한 합리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적 직관주의(social intuitionism)’를 제안했다. 이 논문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도덕적 딜레마가 소개된다.

“줄리와 마크는 남매다. 대학생인 그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바닷가 근처 오두막에서 단둘이 있게 된다. 그들은 한번 사랑을 나눠 보면 흥미롭고 재미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소한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줄리는 이미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마크 역시 안전을 위해 콘돔을 사용했다. 두 사람 모두 섹스를 즐겼지만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을 특별한 비밀로 간직하였으며 그로 인해 서로 더욱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여러분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매는 성교를 해도 괜찮았는가?”

이어서 하이트는 이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매가 섹스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즉각 말한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사람들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근친교배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그러나 줄리와 마크는 이중의 피임 조치를 취했다. 사람들은 줄리와 마크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남매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다. 결국 많은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르겠어요.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을 못 하겠어요. 다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알아요’라고.”

하이트는 근친상간이 분명히 부도덕한 행위라고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선뜻 설명하지 못하는 반응을 ‘도덕적 말문 막힘(moral dumbfounding)’이라고 명명하고, 이런 반응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이유를 얼른 떠올리지 못하면서도 잘못된 사실만은 곧바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사람은 칸트나 콜버그 같은 합리주의의 주장처럼 전적으로 이성에 의해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 먼저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도덕적 판단에서 이성의 역할을 평가절하하고 사회적 영향을 받는 직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사회적 직관주의 모델(SIM)’이라고 명명했다. 하이트는 논문의 끄트머리에서 “도덕적 정서와 직관이 마치 개가 그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도덕적 이성을 조종한다는 흄의 명제를 다시 생각해 볼 때”라고 썼다. 논문 제목에서 개의 몸통을 정서에, 이성은 꼬리에 비유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트롤리 문제’의 딜레마를 말해주는 그림.

“도덕적 판단은 인지·정서에 모두 의존”
도덕적 판단에서 정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뇌 연구에 의해서도 확인되었다. 하버드대의 심리학자인 조슈아 그린은 사람들이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의 딜레마에 대처하는 심리 상태를 연구했다. 트롤리는 손으로 작동되는 수레다. 트롤리 문제는 두 개의 시나리오로 구성된다.

하나는 트롤리의 선로를 변경하는 시나리오다. 트롤리가 달리는 선로 위에 다섯 명이 서 있다. 트롤리가 그대로 질주하면 모두 죽게 된다. 트롤리의 선로를 바꿔 주면 모두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선로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트롤리의 선로를 변경하면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의 시나리오는 트롤리 앞으로 한 사람을 밀어넣는 것이다. 선로 위의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트롤리를 가로막아 정지시키는 경우이다. 두 시나리오는 트롤리를 저지하는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조슈아 그린의 연구 결과, 실험 대상자 거의 모두가 첫 번째 시나리오에는 공감했으나 두 번째 시나리오는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트롤리의 선로를 바꿀 수는 있어도 트롤리 앞으로 사람을 떠밀어 죽게 할 수는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결과가 똑같은 두 시나리오 중에서 한 개는 동의하고 다른 하나는 거부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그린은 실험 대상자들의 뇌 속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들여다보았다.

첫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배외측전전두피질(DLPFC: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증가했다. 이 부위는 우리가 사고와 판단을 할 때 반드시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는 복내측전전두피질(VMPFC:ventromedial PFC)이 활성화됐다. 이 부위는 공감·동정·수치·죄책감 같은 사회적 정서 반응과 관련된다. 요컨대 두 번째 시나리오가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더 강력하게 정서와 관련된 영역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2001년 그린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9월 14일 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성이 도덕적 판단을 지배한다는 대다수 철학자의 주장과 달리 감성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정서가 예상외로 도덕적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최초의 연구 성과로 평가된다.

그린은 트롤리 딜레마에서 뇌의 인지 영역과 정서 부위가 모두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조너선 하이트의 사회적 직관주의 이론을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2010년 그린은 월간 ‘인지과학의 논제(Topics in Cognitive Science)’ 7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하이트처럼 도덕적 판단에서 정서와 직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합리적 추론의 비중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롤리 딜레마에서처럼 도덕적 판단이 인지 과정과 정서 반응에 모두 의존한다는 뜻에서 ‘이중처리(dual-process)’ 모델을 제안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120만 부 넘게 팔렸다. 이 책에는 조너선 하이트나 조슈아 그린의 이론은커녕 이들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옳고 그름은 합리적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한 칸트와 ‘도덕은 판단되기보다는 느껴지는 것’이라는 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헤아려보는 수고는 120만 독자 여러분의 몫이 아닌가 싶다.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9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이인식의 멋진 과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