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밀리면 세계대회 '무관' … 한국바둑 마지막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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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 바둑의 세계대회 마지막 우승이 된 지난해 삼성화재배 결승전. 이세돌 9단(오른쪽)은 구리 9단을 2 대 1로 꺾고 우승했는데 두 판 모두 극적인 반집 역전승이었다. 이후 일본은 TV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한국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올해의 마지막 대회인 삼성화재배에서 다시 한번 멋진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 한국기원]

지난해 12월 13일 삼성화재배에서 이세돌 9단이 거둔 우승은 실로 극적이었다. 결승 3번기의 전적은 1국 반집 승, 2국 불계패, 3국 반집 승이었다. 1국에선 이세돌 본인의 표현대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바둑”을 반집 차로 역전시켰고 2국에선 대마가 죽어 만방으로 졌으며 최종국인 3국에선 다시 비세의 바둑을 꾸준히 추격하여 반집 차로 승리했다. 이세돌은 도합 ‘1집’을 이겼고 그 1집으로 삼성화재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집중하기 위해 아침을 굶고 커피만 마시면서 혼신을 다한 이세돌의 눈물겨운 승리였다.

 신기한 것은 그 우승이 한국 바둑의 마지막 우승이란 점이다. 올해 들어 세계무대는 중국의 독무대가 됐고 ‘한국 우승’이란 단어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1월 바이링(白靈)배에선 저우루이양 9단 우승, 2월 LG배는 스웨 9단 우승, 3월 응씨배는 판팅위 9단 우승, 6월 춘란배는 천야오예 9단 우승. 지난 20년간 세계무대를 지배했던 한국 바둑은 갑자기 종적이 묘연해졌다. TV아시아 대회에서 일본의 이야마 유타 9단이 우승한 것이 비중국 기사의 유일한 우승이었다.

 한국 바둑의 추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6월의 LG배와 8월의 몽백합(夢百合)배에선 한국 기사들이 16강에서 전멸하며 8강에 단 한 명도 올라가지 못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 바둑은 왜 이렇듯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것일까. 1∼2명의 천재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던 한국이 이세돌 이후 천재를 배출하지 못했고 그동안 차곡차곡 힘을 쌓아온 중국이 때를 맞춰 화산처럼 저력을 분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3삼성화재배월드바둑마스터스(총상금 8억원, 우승상금 3억원) 본선이 세계 32강이 운집한 가운데 9월 3일 상하이 메리어트호텔에서 개막된다. 전년도 우승자인 이세돌 9단과 준우승자 구리 9단, 그리고 올해 세계를 휩쓴 중국의 ‘90후’들을 포함해 한국 13명, 중국 15명, 일본 3명, 미국 1명이 출전해 3∼5일 사흘간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으로 16강 진출자를 가린다. 32강전에 앞서 2일엔 ‘바둑 글로벌화를 위한 방향과 전략 탐색’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리고 이세돌 9단, 구리 9단, 유키 사토시 9단(일본 10단 타이틀 보유자), 월드조를 통해 본선에 진입한 미국의 에릭 루이 아마 7단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에 이어 추첨식을 겸한 전야제가 열린다.

 바둑 팬들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 대회를 주목하고 있다. 삼성화재배는 올해 마지막 세계대회다. 한국이 흐름을 뒤바꿀 마지막 기회다. 세계바둑은 중국이 장악했지만 지난해 이세돌의 심혼이 담긴 ‘1집 우승’을 기억하는 팬들은 다시 한번 삼성화재배의 기적을 고대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과연 최근의 슬럼프를 떨치고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한국은 1988년 세계대회가 창설된 이래 120번의 대회 중 68번을 우승했고 삼성화재배에선 17번 중 11번을 우승했다. 또 96년부터 2012년까지 17년간 매년 한 차례 이상 우승을 이어왔다. 삼성화재배에서 우승에 실패하면 17년 연속 우승의 기록도 멈추게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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