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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3.0, 좌파의 몰락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 생각해보자. 작년 2월 충칭시 공안국장이라는 왕리쥔(王立軍)이라는 자가 청두(成都)의 미국 총영사관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 지 말이다. 보시라이는 재판에 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는 7인의 최고 권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꿰차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을 게다. 아내 구카라이의 살인 사건도 덮였을 것이고, 하버드대 다니는 아들 보과과는 미국 친구들을 비행기에 한 가득 싣고 중국을 방문했을 게다.

그런데 왕리쥔이라는 자가 일을 망쳤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보시라이에게 뺨을 얻어맞아 분풀이로 갔는지, 아니면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와의 '어두운 사랑(暗戀)'이 들통나 그랬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의 총영사관 진입은 주변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시궁창으로 몰아 넣은 비극이었다.

그가 시궁창으로 밀어 넣은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좌파(左派)세력들이다. 청두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보시라이는 중국 좌파 지식인들의 영웅이었다.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국가 주도의 평균주의를 실현하는 유력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보시라이의 몰락은 그 좌파에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좌파가 누구냐고?

개혁개방 30년 성장의 혜택은 특권층에만 돌아갔다. 빈부격차는 심화됐고,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날로 커졌고, 부정부패는 서민의 삶을 파괴할 정도로 일상화되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가져온 이같은 성장의 폐해를 바꿔보자는 세력이 바로 좌파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차별과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좌파는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자고도 한다.

이 블로그를 읽어 온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아니 보신 분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시작된 시리즈를 꼭 읽어주시길 바란다. 오늘 중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들이 거기에 있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2271766

보시라이 재판이 끝났다. 우리는 그 재판에서 무엇을 봐야할까?
칼럼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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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월가에서 터진 금융위기는 중국 정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 성향의 우파 세력에 밀려 비주류로 전락했던 좌파가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좌파 지식인들은 국가 주도의 평균주의를 실현할 좌파 모델을 찾았다. 그들이 주목한 곳이 충칭(重慶)이었다. 당시 충칭은 농민을 위한 주택제도 개선 등 마오쩌둥 식 평균주의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를 주도한 지도자가 바로 보시라이(薄熙來)였고, 그는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중국 네티즌들의 지적대로 재판은 ‘쇼’다. 납득할 만한 형량을 정해 놓고, 적당히 공방을 벌인 뒤 마무리하는 수순이다. 재판부는 인민들에게 성역 없는 법치(法治)의 모범을 보이고, 피고 측은 당당한 변론으로 얼굴을 살리는 구도다. 그러나 거기가 끝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쇼’ 뒷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 대결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보시라이가 중앙정권에 ‘반역’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 성향 정책과 그에 대한 지식계의 호응이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2008년 충칭으로 몰려가 ‘충칭모델’을 찬양했던 바로 그 세력 말이다.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 중 하나인 추이즈위안(崔之元)은 지금도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시도했던 각종 정책들은 미래 중국의 발전을 위한 귀한 자산'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좌우 노선 투쟁의 대표적인 접점은 ‘헌정(憲政)’이다. 올 초 ‘자유주의의 본산’이라는 ‘남방주말’(잡지)의 기자들은 ‘헌정(憲政)의 꿈’이라는 제목의 신년사 제작 과정에 당국이 개입했다는 이유로 파업을 벌였다. 우파의 공격이다. 요즘은 반대다. 인민일보는 이달 초 ‘헌정’을 비난하는 기고문을 3일 연속 싣는 등 보수파의 반격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줬다. 작년 12월에는 '헌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던 시진핑(習近平)주석마저 지금은 반(反)헌정 진영에 서는 모습이다.

전선은 경제로 번지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시장의 힘을 강조하는 우파 성향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국유기업의 독점을 풀고 정부 개입을 자제한다. 그 정책 역시 ‘국유기업은 산업의 근간(인민일보 보도)’이라는 좌파의 공격을 받고 있다. 리 총리의 작품인 상하이자유무역지구 설립도 공공연한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시진핑의 정책노선이 결정될 올가을 3중전회를 앞두고 좌우 투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

중국 지식인 사회를 연구해 온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집행이사는 최근 발행된 『China 3.0』이라는 책을 통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3.0 시기’로 규정했다. 마오쩌둥 시대(1.0), 덩샤오핑 시대(2.0)와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버전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좌우 대립은 3.0 시대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번 재판은 결국 차이나3.0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관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재판은 끝났다. 그러나 막후 좌우 노선 투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좌파 세력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나친 우경화가 지도부의 반발을 불러와 오히려 좌파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지금 인민일보 등에서 보여지는 반우(反右)성향은 이를 보여준다). 그 결과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경제판도를 바꿀 수 있다. 이번 ‘쇼’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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