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盧 코멘트에 美 "NO 코멘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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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코멘트." 리처드 바우처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간)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의 전날 발언에 대해 논평을 삼갔다.

盧당선자는 대한상의 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은 한반도 전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전쟁을 막고 불안을 없앨 수 있다면 (미국과) 다른 의견도 말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기자들의 요구에 바우처 대변인은 "특별히 논평할 게 없다"고 넘어갔다.

그동안 미국은 단 한번도 북한과의 전쟁을 직접화법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지난해 2월 방한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이래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 왔다. 바우처는 정말 할 말이 없어서 '노 코멘트'라고 했을까.

외교는 말이다. 말이 돼야 외교가 된다. 이달 초 워싱턴을 찾은 盧당선자 특사단은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과 만나 '한.미관계의 재조정'을 주문하면서 '리밸런스(rebalance)'란 말을 썼다. 방미단이 염두에 둔 재조정은 수평적이고 대등한 한.미관계, 즉 미측의 '태도 변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럼즈펠드 장관은 19일 주한미군 재검토 배경을 설명하면서 "盧당선자 측이 '리밸런스'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盧당선자의 재조정 요청을 주한미군 재배치 요청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군사 분야에서 '밸런스 조정'은 주로 병력 증감 및 재배치의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외교 수완 없이 한.미관계의 재조정은 불가능하다. 외교의 요체는 절제되고 정선된 말이다.

최원기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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