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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경제난과 범죄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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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산이 높아지면 바람이 매서워지듯 경제 위기가 고조되면 범죄가 많아진다. 범죄학자들은 같은 경제위기 지표라도 국내총생산(GDP) 하락보다 실업률.불평등지수에 범죄는 더 예민하게 움직인다고 말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내려가면 범죄 발생은 약간만 변동하지만 일자리가 줄고 빈부 격차가 커지면 그 수치는 가파르게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경제 사정이 나아져도 범죄는 금방 줄지 않는 성질이 있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경제 위기가 사회적 약자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그 상처는 경기가 호전돼도 바로 아물지 않는 탓이다. 경제 위기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사례로 1970년대의 영국과 90년대의 한국 사회가 자주 거론된다.

70년대 중반 런던 거리는 경기 침체와 대량 실업에 휩싸인다. 76년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가 심각했다. 갑자기 실업률이 두배로 뛰고 물가상승률이 20%를 넘어섰다. 이후 10여년 새 전체 범죄는 두배로 늘어났다. 특히 절도.주거 침입.파손.강도 등이 횡행했다. 이런 양상은 90년대 들어서야 진정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 우리의 경우 97년 외환위기 이후 불과 1년 새 재산범죄가 18%, 폭력성 범죄가 13%나 늘었다. 특히 장물매매.폭행.강도 등이 수직 상승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기간에 하류층 범죄는 크게 늘어난 반면 상류층은 오히려 17% 줄었다는 점이다. 연령별로는 40~60대의 범죄가 주로 증가했다. 갑자기 주머니가 비면서 벌어진 사회 불안 여파가 주로 누구에게 덮쳤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최근 집계된 5대 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발생 건수는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지 5년이 넘었는데도 한국 사회가 아직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98년 33만건에서 지난해 47만건으로 커졌다. 외환위기 때 급증한 범죄가 이후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사회 불안과 원한, 억눌림 등이 주요 동기가 되는 방화범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전후 1년 새 무려 50% 이상 뛴 뒤 이후에도 조금씩 늘어왔다.

99년부터 우울증을 앓다 참혹한 방화를 저지른 김대한(57)씨 사건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비극이다. 국민소득은 외환위기 전으로 회복됐다지만 소득불평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실업률 역시 꺾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정말 경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나.

이규연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