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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우보다 내환이 걱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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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이 양적완화 축소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그 후폭풍이 주요 신흥시장과 개도국들을 강타하고 있다. 양적완화 조치 덕에 신흥국에 밀려들어왔던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와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등 금융·외환시장의 혼란이 극심해지고 있다. 신흥시장발 대규모 외환위기의 가능성마저 우려할 정도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 혼란의 소용돌이에서 한발 비켜선 모습이다. 금리와 환율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일시적으로 떨어졌던 주가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부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기까지 하다. 그간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을 가진 데다,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흑자, 단기외채 비중 등이 다른 신흥국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대외지표들은 모두 한국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과거에 비해 확연히 개선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로선 신흥국을 엄습하고 있는 외환위기의 먹구름이 우리나라까지 몰려올 가능성은 극히 작고, 오히려 이번 위기를 다른 신흥경제권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당장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저절로 경기가 회복되고 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큰 위험이 우리 내부에서 싹트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2년째 계속되고 있는 저성장 구조를 벗어날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는 9분기 만에 처음으로 전기대비 성장률이 0%대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여전히 연간 3%에도 못 미치는 저성장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로 겨우 버티고 있을 뿐 투자와 소비 등 내수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거액의 부채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은 앞으로 내수 중심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마저 꺾어놓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계는 지난 2분기에 실질소비를 0.4% 줄였다. 4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여기다 가계 빚은 되레 2분기에 980조원으로 늘어 1000조원에 바짝 다가섰다. 가계 빚이 소비부진과 경기침체를 부르고, 그로 인한 저성장 구조가 가계 빚을 늘리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경제의 외관이 번듯해 보여도 안으로는 저성장의 악순환이 고착화되는 속병이 들고 있는 모습이다. 당장 밖에서 부는 외풍은 막을 수 있다지만 내부적으로 경제를 회복시킬 계기를 찾지 못한다면 펀더멘털이 좋다고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다. 하반기 이후 박근혜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는 바로 이 내부의 속병을 고쳐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를 여는 일이다. 내수 중심의 성장을 통해 경기회복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외풍에 버틸 체력도 바닥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