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스모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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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는 나와 세계사이에 연막을 치기위해서 담배를 피운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노래한 적이있다.
말라르메에게있어 세계는 구역질날만큼 혼탁한 것이었다. 그것은 티없이 맑은 나만의 세계를 끝없이 위협한다. 이래서 그는 외적세계로부터의 탈출을 시의 세계에서 찾았다.
요새 세대에는 담배 연기만으로는 세계와의 연막이 쳐지지않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LSD를 비롯한 환각제가 유행되고, 우리나라에서도 2년전부터 해피·스모크가 대학가의 일부에 침투했다한다.
LSD는 50g으로 백만명을 환각시킬만큼 강력하며, 성냥개비끝에 살짝 묻은 것만으로도 환각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대마잎으로 만든 해피·스모크도 이에 못지않게 무섭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환각제의 해독보다도 그런 연막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젊은 세대의 의식에 있다. 『제발 내가 내마음대로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당신네 세계의 광기속에 끌어들이지 말아다오』 이게 비트·제너레이션의 메시지였다.
『나는 아무데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파리약에 걸려 손발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파리들 같다. 나는 아무때고 아무데나 갈 수 있다. 난 자유인인 것이다.』-. 이렇게 비트 시인이 노래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자유는 사실은 하나의 환각에 지나지않았다. 재크·케루악의 소설 『도상에서』의 주인공처럼 그저 마냥 거리로 나설 수도 없다. 또 피로감만 겹칠 뿐이다.
이래서 비트 다음의 히피족은 환각제를 애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은 개척할 프런티어가 없을만큼 난숙한 미국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디엔가 젊음의 에너지의 배출구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렇게보면, 우리네 젊은이의 해피·스모크는 너무 이르다. 할 일도 많다. 개척할 프런티어도 많다. 젊은이에게 남겨진 책무도 많다.
그렇다면 왜? 단순한 유행이라면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에 해피·스모크가 젊은 세대의 소외감, 무력감, 공허감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면? 정말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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