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죽은 줄 알았던 선별복지 다시 살아나다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주역에 ‘무평불피 무왕불복(无平不陂 无往不復)’이라는 말이 있다. ‘언덕 없이 마냥 평평한 땅은 없고,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정도로 풀이하면 될 것이다. 인생사에는 이런저런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남에게 끼친 선행이나 악행은 꼭 되돌아온다는 경구로도 해석된다. 불교의 거자필반(去者必返)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라는 성경(전도서) 구절도 연상된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여론의 부침(浮沈)과 밀물 썰물 현상을 보더라도 역시 무평불피 무왕불복이다. ‘선별’ 진영에 대한 ‘보편’ 진영의 완승으로 끝난 줄 알았던 복지 논쟁 이야기다. 클라이맥스는 2011년 서울시의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였다. 오세훈 당시 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단행한 주민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투표함 뚜껑도 열어보지 못하고 완패로 마감했다. 오세훈은 그해 8월 시장직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총선·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5월 영국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한동안의 상하이 체류를 거쳐 연말에 귀국했다.

 오 전 시장이 영국으로 떠나기 전 사석에서 만난 기억이 있다. 그는 “마음이 복잡해 테니스에 열중하다 무리한 나머지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고 했다. “언젠가 정치를 재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정치는 찾아주는 국민이 있어야 하는 건데, 나는 지금 죽어 넘어진 시체 아니냐”며 웃었다. “지금은 모두들 광풍(狂風)에 휘말려 가는 느낌”이라는 그의 말에는 못내 아쉬운 심경이 배어 있었다.

 지 자 체장들이 보육예산을 감당 못하겠다고 원성을 토하더니, 이번엔 경기도에서 추경안에 들어갈 예정이던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인천시는 중학교로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시 ‘복지에는 청구서가 따른다’는 인식이 점차 퍼졌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공약인 고교 무상 교육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걱정들이 많다. 여론조사에서 ‘세금을 더 낼 테니 복지 수준을 높여라’는 국민이 40%밖에 안 되는 ‘썰물’ 현상을 정치인들의 예민한 후각이 놓칠 리 없다. 보편적 복지 대(對) 선별적 복지 논란 2라운드다.

 복지 문제는 따지고 들면 한없이 어렵겠지만, 단순화하면 초등학교 산수다. 누가 공짜로 받으면 누군가 그 돈을 대야 한다는 것, 딴 데서 돈을 더 벌든가 윗돌 빼 아랫돌 괴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 요즘의 반전 기미는 뻔한 산수를 숨기고 말의 성찬만 베푼 결과 아닐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