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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 거듭한 13세기만의 재현 불국사 복원 설계|김정기 (문화재 관리국 문화재 연구 실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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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국사는 임진왜란에 소실된 후 몇몇 주요 건물이 중건되기는 하였으나 끝내 신라 창건 때의 웅장하고도 정연한 가남의 복원을 보지 못했다. 다만 청·백운교를 비롯한 다보탑 등 당시의 석조물만 남아 있는 터인데 이번 독실한 신자들의 성금에 의해 비로소 창건 당초의 모습을 복원하게 되었다.
이 복원 공사는 정확한 고증에 의한 고대 한국 사찰의 정수를 구현하기 위하여 그 설계에 앞서 작년 8월부터 3개월에 걸쳐 사지 전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했고 이어 11월13일에 기공식까지 가졌다.
그 조사 결과에 의거하여 우리들 설계 관계자들은 가장 합리적으로 정확한 불국사의 가남을 재현하려고 여러모로 연구 검토하여 최근 그 기본 설계를 마쳤다.
설계 작업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복원 건물의 주요 자재에 있어 목재설과 철근 「콘크리트」설에 대한 결정 때문이었다.
원래 우리 나라 건축은 목조 건물이 그 주류를 이루어 왔으므로 본재를 쓰는 것이 가장 타당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우리의 현시점에서 목재를 덜 쓰려는 안은 실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필요한 일이다. 특히 건물의 유지·관리상 경제성이 큰 까닭에 이미 없어진 것의 복원이고 또 복원된 것이 문화재 일 수 없으므로 철근 「콘크리트」 차선책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 아닐까. 이 문제에 관하여 많은 관계 전문가들이 토의를 거듭해 지난 2월말에야 목재를 사용키로 최종 결정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주요 자재가 결정됨으로써 비로서 설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설계는-
①발굴 조사에서 밝혀진 창건 당초의 가남 배치와 건물의 규모를 고수하며 ②현존 건물과 조화되는 양식으로 하고 ③정확한 고증에 의한 표본적인 한국의 목조 건물을 만든다는 기본 방침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방침에 따라 대웅전 주변과 극악전 주변은 현존 건물이 이조 중기 이후의 것임을 감안하여 건축의 양식적 연대를 이조 중기 이후로 잡았다. 무설전은 조사 결과에 따라 정면 8간 측면 4간의 맞 배 지붕으로 하고 그 양식은 다포 집으로 된 대웅전이 중심 건물이며 이것은 강당에 해당하는 제2위의 건물이기 때문에 좀 간결한 주심포 집으로 만들었다.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을 연결하는 회낭은 이들 건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과식을 피해 아주 간결한 도리집 양식을 채택키로 했다. 극악전을 둘러싸는 회랑은 건물 수가 적고 안양문은 간결한 양식의 주심포 집이기 때문에 대웅전 주변의 경우보다 좀 화려한 양식인 익공집으로 하여 주위의 분위기에 조화되도록 했다. 무설전 서북쪽의 좀 떨어진 곳에 독립된 공간성을 가진 비려전은 조사 결과 대웅전이나 무설전 보다 기단 수법이 오래된 것이고 초석 간격 역시 다른 건물에 사용된 척도보다 오랜 동위척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불국사 여러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음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복원 건물 중 제일 오래된 양식인 정면 5간 측면 3간의 고려 중기 주심포 집으로 하고 지붕은 입작 지붕으로 했다.
여기서 한가지 더 밝혀야할 것은 대웅전이나 극악전에 근접하여 일단의 건물군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 속의 현존하는 주요 건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그들과 거의 같은 시대의 건물 양식을 채택한 것으로 일반에게도 납득이 될 것이나 비려전이나 관음전을 왜 신라 시대 건물로 복원하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 나라에는 신라 시대 목조 건물이 남아 있지 않고 다만 석조물에 목조 건물의 세부 양식이 부분적으로 새겨져 있을 뿐이며 이것들을 종합해 봐도 당시의 목조 건물을 완전하게 재현할 수 없고 만일 꼭 그러한 건물을 만들려고 한다면 불명한 부분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을 참고로 한 추정 복원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추정 복원도 그 나름의 의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가 우려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우리 나라 신라 시대의 건물이라고 오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려전과 관음전을 그 가구에서 양식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는 고려 중기와 이조 초의 건물로 만들어 불국사에서 각 시대의 표본적인 건물 양식의 변천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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