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대서점들의 도산·전업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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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출판계는 최근 불황의 흐름 속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일부 대규모 서점이 문을 닫는가하면 유수한 출판사들은 착실한 단행본 출판을 계속하고, 또 다른 출판사들은 전집류로 성패를 판가름하려 하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에 전국 각 도시의 대표적인 몇 개 도매 서점들이 도산으로 문을 닫았는데 이 가운데는 15년 경영 업체인 목포의 「신우서림」, 청주의 「영재서림」과 군산의 「문학서원」, 대전의 「고려서적」이 포함돼 있다.
비록 문은 닫지 않았으나 어음의 부도로 한국 출판 협동 조합을 통한 출판사와의 거래가 정지된 곳은 진주의 「대양서적」, 춘천의 「서울서점」, 인천의 「청운서관」등이 있다.
서울에 있어서도 협동 서점의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다른 업체로 전향한 곳은 「육문사」·「신원서점」·「의정부서림」등이 있으며, 20년 경력 업체인 「국민서관」도 협동 서점 철수를 비치고 있다. 이 같은 사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난 것은 군산 「문학서원」 주인 정모씨의 자살 사건이었으며, 전남·북도 서적 판매를 좌우한 이 서점의 도산은 출판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분석, 그 원인으로 ①거래액에 대해 자기 자본이 너무 빈약한 것 ②위탁 판매라는 사실을 잊고 판매 대금을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유용한 것 ③외판의 증가·정찰제 실행 불가능·출판사 측의 무질서한 거래 ④당국의 강력한 부교재 단체 판매 억제 ⑤악덕 출판업자의 「덤핑」등을 들고 있다.
추금호씨 (한국 출판 협동 조합) 는 이 가운데도 특히 올해 발족된 육성회 제도로 학교들이 부교재 채택을 못하게 되고, 따라서 서점들이 팔릴 것을 예상하고 연수표를 발행, 책을 인수했다가 공급이 안되고 출판사들은 그대로 돈을 뽑는데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점의 도산은 거래 출판사의 손해도 가져다준다는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밖에 동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한 「덤핑」이 출판사의 난무가 정상적인 출판사와 서점들을 위협하는 것도 문제다.
판매 성적이 좋은 정상 출판물을 무책임하게 발췌, 겉모양만 번듯하게 모방해 내놓은 「덤핑」출판물들은 단순히 정상적인 출판사와 서점을 위기에 몰고 갈 뿐 아니라 건전한 독서 층 마저 좀 먹는게 사실이다.
또 출판업자들의 이중 거래도 무시할 수 없다. 출판업자는 조합을 통한 판매 외에 별도로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서점에도 염가로 판매하는 것이다.
때문에 조합 가맹 서점은 비용만 많이 쓰고 혜택을 못 받고 있다. 그러나 서점가의 불황은 실제로 독서 인구의 부족, 사업 자금의 부족, 경영상의 잘못 등에 그 원인이 있다.
불황 속에서도 몇몇 유력한 출판사들은 계획성 있는 단행본을 출간하고 있으며 성패를 가름하는 전집, 시리즈 출판물이 줄이어 나오기도 한다.
특히 한국 문학 전집을 간행 또는 기획하고 있는 성음사 삼중당 현대 문학사는 같은 유의 기획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또 삼성 출판사의 『대한 백년』과 신태양사의 『대한 제국』도 필사적인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편 문공부와 출협은 출판계 불황의 타개를 위해 작년에 출판 금고를 설치, 1천만원을 확보했으나 활동은 시원치 않다.
겨우 「책 바꿈표」제도와 국립 공보관에 상설 도서전 시장을 개설했을 뿐 출판사에 융자를 통한 적극적인 활동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1천3백50만원의 정부 보조금이 더 책정되고 있으나 6월로 예정된 독서 신문의 발행에 투입될 예정이기 때문에 실제적인 출판계의 도움은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출판금고」측은 1천만원 자금을 기금으로서 그대로 확보할 결의이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 지원을 기대하는 것이며 출판사들은 처음에 기대했던 융자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출판금고」의 존재에 대해 불신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정신의 양식이 될 양서의 출판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자금 부족과 출판계 상호간의 이상 경쟁 그리고 일원화되지 않은 유통 질서 속에서 제각기 살길을 찾아 발버둥치는 혼란을 빚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정신을 가다듬어야한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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