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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프람바난의 유적 힌두교 사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찬삼 여행기(인니서 제15신)>
외돌토리처럼 쓸쓸히 도사리고 앉은 불교의 유적 보로두부르도 자바 여행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것이지만 힌두교의 유적 프람바난도 이에 못지 않게 훌륭한 관광의 대상이다.
이 사원은 힌두교가 세력을 차지했던 옛날에 지은 것이라는데 허허벌판에 우뚝 서있는 힌두교 특유의 건축미가 풍기는 이 사원의 인상은 종교적인 무한한 법열을 느끼게 했다. 사람들이 별로 오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고고하게 느껴지는지는 모르나 때묻은 세속을 떠나 고답적인 세계로 이끌어 주는 것 같았다. 불교유적 보로두부르도와도 같이 이교이기 때문에 이렇게 호젓하게 지내는 이 힌두교 사원을 황홀하게 보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저녁을 어디서 얻어먹고는 이 사원에서 하룻밤을 자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서 얼마 떨어진 어떤 오막살이집을 찾아 주인의 호의로 시장기를 채운 뒤 바깥은 자꾸만 어두워지기에 사원에 가서 자려고 가겠다고 했더니, 이 집 내외는 그런데서 어떻게 자느냐고 하며 말렸다.
그러나 이미 마음먹었던 것을 중지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사원과는 무언의 약속을 한 셈인데 저버릴 수는 없다. 찬란한 성좌로 뒤덮인 밤하늘에 솟아있는 삐죽한 사원꼭대기에서 기저에 이르기까지 그 꺼먼 모습은 드높은 외경감을 자아내었다. 그런가하면 무슨 거대한 괴물과도 같이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마치 웨딩·마치의 선율에 맞춰 조용히 식장에 들어서는 신랑처럼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등켜안고 한 발짝씩 다가갔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어 주위는 조용했으며 사원에 들어서니 신비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저녁때 보아두었던 돌 바닥에 걸터앉으니 낮에 태양열을 받아둔 때문에 뜨뜻했으며 이부자리는 있을 리 없건만 보금자리처럼 느껴졌다. 말하자면 힌두교 여신의 따뜻한 품이었다.
밤의 사원이 풍기는 영상은 매우 성화된 감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원이란 밤에 들어와야 할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느꼈다. 밤이라야 자기의 상상에 따라 이 사원이 지닌 숨은 갖가지 비밀을 비롯한 드높은 덕성, 종교선들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로 비추며 밤의 사원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자리에 누웠다. 이 사원이 토로하는 말을 듣고 싶은 강렬한 욕정이 솟구쳤다. 오랜 세월을 쓸쓸히 지내는 미망인과도 같은 이 버림받은 사원이 자기 품에 안긴 이 낯선 나그네에게 필경 무슨 이야기라도 할 것만 같아 귀를 쭈볏이하고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내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죽음의 세계와도 같이 조용한 이 영겁의 적막! 이것이 어쩌면 힌두교의 여신이라 할 이 사원이 속삭이는 은밀한 밀어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소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한밤이 지나 동이 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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