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존심만으로 안보 지킬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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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리언 러포트 주한미사령관이 20일 미 헤리티지재단 등이 주최한 세미나 연설에서 "한.미동맹조약과 군지휘권 문제 전반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같은 이 나라 안보의 기본이 되는 문제들을 왜 미국 쪽에서 이렇게 거론하고 나오는지에 대해 매우 당황스럽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안보주권을 위해 군지휘권 문제를 우리가 되찾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므로 아무런 유보없이 환영해야 할 발언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황스럽고 석연치 않은 까닭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의 긴박성 때문이다. 우선 북핵 문제로 야기된 긴장국면에 마땅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또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한 한.미 간의 인식 차이도 만만치 않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한.미 간 견해차는 분명히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면 동맹 간의 인식차이가 심각하다고 보아 마땅하다.

주한미군 감축이나 재배치, 연합사 지휘체계 재검토는 우리의 자주국방 역량과 추가적인 재정 부담의 감수 여지 및 독자적인 군사작전 수행 능력 등에 대한 전반적 검토 위에 진척되는 것이 순리다. 사실 미 정부의 주한미군 감군과 재배치 구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우리 군의 자존심이 걸린 숙원사업이다.

그러나 국민의 안위가 걸려 있는 이런 문제들은 우리의 능력에 맞춰 진행돼야 한다. 우리 군은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런 일들을 거론하고 진행시키려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盧당선자는 일전에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새 정부의 분위기는 국익에 대한 위협의 실체가 무엇이며 또 얼마나 긴박한지를 따지기보다 민족의 자존심을 앞세워 동맹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부각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는 미국이 당선자의 이러한 발언에 대한 응답으로 주한미군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다면 더 이상 말로써 분란을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 안보는 자존심이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