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여석기<고대교수·영문학>|연극|무대의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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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에서는 시대 착오적인 공연법에 의할 것 같으면 연극하는 장소인 고유의 의미의 극장과 영화관이 구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법 자체뿐만 아니라 일반의 인식이 양쪽을 다 극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금도 많으리라. 하긴 극장과 영화관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도 단순히 넓다해서 시민회관 같은데서 연극을 하려고 드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우리 나라에는 1903년 이전에는 지금 일반이 생각하는 의미의 극장이란 것이 없었다. 이해에 비로소 협률사란 것이 생겨 옥내 무대가 처음으로 선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에 연극이 없었느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 이전의 탈춤(가면극)은 바깥의 평지에서 상연되었다. 판소리도 요즘 말하는 뜻의 극장은 필요치 않았을 따름이다.
연극사의 책을 보면 배우의 흔적은 많이 없어도 극장 건물의 유적들은 많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서구의 경우「그리스」「로마」의 석조로 된 반원형 야외 극장이 너무나도 웅장하고 화려한 바람에 연극하는 모든 장소는 전부 그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시대와 나라에 따라 연극하는 장소의 개념은 바뀌게 마련이다. 서양 중세기의 연극은 주로 종교적 소재만을 다루었는데 항구적인 극장은 없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거리」로 나가 연극을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해서 날치기 무대였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다. 한 장소에 각기 별개의 장면을 나타내는「집」(그것을 요즘 무슨「맨션·아파트」니 하는「맨션」이란 용어를 썼다)이 있어서 그러한 집들이 천국에서 지옥까지(왜냐하면 당시의 종교극은 대개 구약의「에피소드」를 그대로 무대화 했으니까)일 예로 나란이 선다.
거기에서 순차적으로 연극이 이뤄지는데 그러한 무대가 대규모적인 경우 사람들은 장소를 옮겨가며 연극을 구경하였다.「프랑스」의 어느「신비극」의 경우는 길이가「괴테」의『파우스트』1, 2부를 합친 것의 5배쯤 되는 정도였었다니 그 규모나 소요시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비슷한 제재인데「집」을 한군데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수레바퀴를 달아서 이동식 무대로 만들어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옮아가게 하였다. 이러한「페전트」(행렬)의 무대(장면) 숫자가 50∼60개를 넘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전체의 공연 길이는 하루 이틀에 이뤄지기는 힘드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한국의 경우도 탈춤인 양주 별산대 놀이 같은 것은 밤을 꼬박 새워가며 연극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아뭏든 무대와 객석의 개념은 일정치 않다.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프로세니엄」 무대- 객석과 무대를 가르는 벽이 있고 그 칸막이로서 막을 드리우고 잇는 양식의 극장이 확립된 지는 불과 수 3백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서양에서 말이다. 연극이 관객과의 보다 흉허물 없는 접촉을 가지기 위해서 이 벽을 깨보려는 움직임이 현대 연극 속에서 꾸준하게 흘러왔다.
어떤 사람은 무대를 관객석 앞으로 쑥 내어 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무대를 관객들 한 가운데다 갖다 놓기도 해 보았다.
극장이라는 장소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 신전에서 연극을 했고 산비탈, 장거리, 들판, 아니 물위에서 했다면 왜「다방」안에서 해서 안될 일이었으며 낡은 창고 속인들 무엇이 나쁘랴. 옥상도 좋고 지하실도 상관없다. 무대를 객석과 한데 섞어 버리면 어떻겠는가?
이 모든 실험과 기도 가운데서 지금 새로운 연극이 이뤄지고 있다. 단순히 장소의 개념이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해서「연극」자체의 개념을 달리하자는 의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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