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2)|경제관리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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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구의 남성들이 아내를 고를 때 첫째로 꼽는 조건은「절약」(서독)이나『살림을 요령 있게 꾸미는 재능』(영국) 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심한 악처의「타입」으로는 남편을『월급 운반기』정도로 취급하는「보스」형을 꼽는다.
이렇게 아내에게「살림꾼」을 요구하는 서구의 남성들은 그러나 살림을 꾸리는 주도 역을 남편 스스로가 맡고 있는 것이 상례라고 한다. 서양 만화에서 남편에게 물건 살 돈을 많이 타내려고 애태우는 주부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남자는 집안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바깥출입만 잘하면 되는 것으로 여기고, 현처라고 하면 남편에게 집안 일을 의논하지 않고 어쩌면 남편 몰래 살림을 잘 꾸려 나가는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남성들 사이에서도 집안일, 특히 돈 문제를 간섭하는 남편을 소심하다고 경멸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남편들은 그리하여 스스로 『월급 운반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집안일 모든 것을 『남자가 어떻게…』로 회피하고 아내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것은 농사를 주업으로 하던 옛 사회에서부터도 끼니걱정은「안에서」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여자에겐 절약이 큰 미덕으로 내려오게 하였다. 그러나 요 근래 사회적 경제 성장과 더불어 편리한 문명이기들이 생활을 지배하면서부터는 절약보다는 수입을 올리는 면으로 쏠리고 있다.
『좀더 많은 수입』을 위해서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주부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직장의 문이 넓어지고 사회정보가 달라짐에 따라 돈을 버는 주부가 늘어나고 소비만 하는 역을 벗기 시작한 것이다. 주부들의 취업과 부업은 앞으로도 많이 늘어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주부가 돈을 버는 일은 생활수준의 향상에 큰 힘이 되고 또 주부 쪽에서 봐도 경제관념의 올바른 자각으로 살림을 꾸리는데 도움을 주지만 오늘날 한국의 현실에서 또 다른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아내가 직장에 나가 돈을 벌기보다는 집에서 살림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 같다』고 불평하는 남편들이 많다. 그러면 왜 이런 경우가 생길까.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의 여성들이 한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수자에 밝지 못해 낭비가 많다고 지적한다. 가계에 과학을 심어야 한다는 것은 한국 어머니들에게 제일 급한 문제이다.
아껴야 할 곳과 써야 될 곳을 분별해야 한다. 시장에서 콩나물 5원어치로 옥신각신 하는 주부들이 미장원에 가면 몇 백원의「팁」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난센스」다. 도시주부들의 62%가 한 달에 한 두 번 이상 미장원 출입을 하고 동네 양장점의 제일후한 단골이 가정 주부 층이라는 사실은 여자의 허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수학적「센스」의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주부들이 수자에 둔감하다는 것은 바로 가계에서 찾을 수 있다.『예산이 없는 주먹구구식』가계가 거의 대부분이다. 때문에 식모 월급이 우리 집 수입에서 몇 %를 차지하고 식모를 둠으로써 물건의 낭비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 못하고『남들이 하는 데에 맞추어』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따위의 가정이 적지 않다. 월수 2만원이상 되는 도시가정에서 식모를 두는 가정이 절반을 넘는데 식모의, 월급은 특수한 경우를 내놓고 2천원∼5천원. 생각해볼 문제다.
일일이 돈을 따지는 일을 수치로 알아온 한국인들에겐 좀 더 나은 살림을 위해 예산이 있는 가계, 수자로 적는 가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돈의 문제만이 아닌 시간과 노동의 규모 있는 배분을 수자로 그려놓는 살림이 돼야겠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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