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구들에 불 지펴 손님몰이 … 산골의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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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워진 공기가 구들장 밑을 지나면….” 지난 9일 임정훈 황토구들마을 사무장(오른쪽)이 관광객들에게 구들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평창=안성식 기자]

치밀하게 관광객·소비자의 특성을 분석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저 “남들 하지 않는 것 해보자”는 정도로 시작했다. 그게 맞아떨어졌다. 결과론이겠지만 마을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한국인의 유전자에 맞는 사업을 택한 것 같았다. 이따금씩 가난한 시절의 향수에 젖고, 또 뜨뜻한 데서 몸을 지지기 좋아하는 그런 DNA 말이다.

 강원도 평창군 백옥포2리 ‘황토구들마을’. 전통 난방인 ‘구들’을 내세워 관광객을 끌어모았다. 지난해 찾아온 관광객이 5000여 명. 인적이 뜸한 평일을 빼고 매 주말 100명가량이 들르는 셈이다. 체험 수입에 관광객의 입을 타고 퍼져나간 ‘친환경 잡곡’ 판매를 더해 황토구들마을은 한 해 11억원 가까운 관련 매상을 올리고 있다.

"남들과 다르게 … " 전통 난방 체험사업

 이곳은 해발 550m에 자리한 산골. 지금도 버스가 하루 두 대뿐이다. 그것도 읍내가 아니라 이웃 봉평면으로 가는 버스다. 1970년대 60여 가구였던 마을은 도시를 찾아 주민들이 빠져나가며 90년대 말 30여 가구로 쪼그라들었다. 그것도 노부부만 남은 2인 가구가 태반이었다. 2005년 보다 못해 유광수(58) 이장이 나섰다. “뭔가 특색 있는 사업을 벌여 관광객을 끌어들여 보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일단 ‘옛것에 대한 향수’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마련한 게 기와집으로 된 ‘구들 체험관’이었다. 자금은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받은 지원금 2억원을 활용했다. 하지만 찾는 외지인은 없었다. 외딴 산골에 구들 체험장이 생겼다는 것을 도시인들이 알 리가 만무했다.

친환경 잡곡 함께 팔아 작년 수입 11억

 주민들이 다시 머리를 맞댔다. 사업 확장을 결정했다. 조·수수 같은 친환경 잡곡을 팔고, 강원도에 정착하려는 이들을 위해 귀농·귀촌 교육을 하는 거였다. 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 교육기관’ 지정을 받았다. 구들 체험도 키우기 위해 구들 난방을 하는 기와집 숙소를 지었다. 경비는 강원도의 ‘새농어촌 건설사업’ 자금 5억원으로 충당했다. 2009년의 일이었다. 뜻밖의 효과가 나타났다. 한 달에 수십 명인 귀농·귀촌 교육자들이 입소문을 냈다. “경치 좋더라. 아 참, 그리고 거기 가면 뜨뜻한 구들에 누워 잘 수도 있어.”

 외지인들 발길이 잦아졌다. 새벽비가 내린 지난 10일 오전에도 서울에서 20여 명이 내려와 구들·활쏘기 체험을 하고, 마을에서 기른 친환경 잡곡을 사 갔다. 구들 프로그램은 원리 설명과 미니 구들을 만들어 직접 불을 때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이날 온 박도성(41·서울 목동)씨는 “어릴 적 추억이 아련히 살아났다”고 말했다.

기와집 숙소, 때론 주민 찜질방 겸 사랑방

 관광객들은 친환경 잡곡 홍보대사가 됐다. 그게 보탬이 돼 대형마트에까지 진출했다. 주민들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관광객이 오지 않는 평일에 숙소가 찜질방 겸 사랑방 역할을 해서다. 손님이 없을 때 숙소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구들에 불을 때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마을은 농식품부가 지원하는 ‘농촌현장포럼’을 통해 또 다른 변신을 모색 중이다. 농촌현장포럼이란 교수나 농촌 활동가 같은 전문가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발전 청사진을 그려내는 것. 유광수 이장은 “평창강이 발원하는 우리 마을은 경치가 빼어나다”며 “피로를 풀어주는 전통 구들에 수려한 경관이라는 자원을 더해 전국적인 ‘힐링 명소’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평창=윤호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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