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배용의 우리 역사 속의 미소

힘차게 달리자, 어머니와 아들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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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우리 역사 속에 미소는 생각보다 무수히 많다. 그만큼 우리 민족이 한(恨)의 민족이라기보다 낙천적인 정서가 더 많은 민족이라는 것을 미소를 쓰면서 새삼 느꼈다. 긍정의 힘이 역사를 바꾼다 하지 않았는가. 오늘 실은 작품은 6·25 때 NBC 뉴스 소속 존 리치라는 종군기자가 찍은 피난민 가족사진이다. 광복절을 전후해 역사 속에 기억해야 할 감동의 장면이라 꼭 소개하고 싶었다.

 이 사진은 어머니가 앞에서 손수레를 끌고 뒤에서 힘차게 아들이 밀면서 앞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다. 가운데 손수레 위에는 어린 딸이 갓난아기 동생을 끌어안고 스산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어머니와 아들은 쌀 한 가마니를 싣고 씩씩한 미소를 띤 표정이다. 아버지는 전쟁터에 나가고 어머니가 어린 자식들을 보살펴야 하는데, 나는 굶어죽어도 자식만은 굶기지 않겠다는 필사적인 의지로 그 시대를 이겨낸 어머니들의 힘을 우리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존 리치(John Rich)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 [사진 서울셀렉션]

 “서신 연락조차 닿지 못했던 중원대륙에 흙바람이 휘몰아칠 때, 손가락같이 굵은 빗줄기가 천형인 듯이 쏟아져 내려와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을 때 그래서 서글프고 그래서 쓸쓸할 때마다 늘 생각이 사무치던 곳, 그곳이 내 나라였다. 내 조국이었다. 그렇게 조국은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어린아이가 집 밖에 나가 놀 때도 어머니는 늘 집 안에 계시듯이 잃어버렸던 조국은 그렇게 있었다.” 임시정부 안살림 역할을 맡고 갖은 역경을 독립투사들과 함께 헤쳐온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녹두꽃』의 ‘해방 후 귀국 전야’에서의 한 구절이다. 외롭고 힘들고 지쳐 있을 때도 어머니가 맞아주시는 돌아갈 집이, 또 모국이 있을 때 마음의 평온과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는 감회이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어머니의 감화로 청백리도, 독립투사도, 인성을 두루 갖춘 인재를 키워내 이끌어 온 역사이다. 높은 하늘 같은, 넓은 바다 같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을 생각하면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닥쳐와도 희망과 용기를 얻어 상생과 화합의 새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