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CF로 신드롬 일으킨 신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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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 인기야? 정말 그래? 몇 사람 이야기는 하던데, 그 정도인지는 몰랐거든. 그래 그림이 전체적으로 괜찮다 싶긴 해. 주위에서 재밌게 잘됐다고들 하구. 그래서 그런가 요즘 밖에 나가면 애들이 사인해달라고들 난리야. 옆에 슬그머니 와서 ‘니들이 게 맛을 알아’ 그러고 도망가는 녀석들도 있구 말이야.

수십 년 탤런트를 했어도 전에는 밖에 나가면 좀 어렵게들 생각하고 별로 아는 체를 안 했드랬지. 왜 내가 했던 역이 만날 좀 근엄하고 진지한 역이었잖아. 배역이 그러니 직접 만나도 좀 어렵게 느껴졌었나봐. 그런데 시트콤 하고 나서 달라졌어. 나이에 관계없이 아주 격의 없이 대하더라구.

그 양반들도 안방에서 옆집 노인 대하듯 보다가 직접 만나니 편하고 반가운 거지. 그게 나도 편해. 서로 좋은 거지 뭐. CF 출연이 처음은 아니야. 나이를 먹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젊었을 때 몇 편 했었지.

이번에 출연 제의를 받고 지난 7월에 촬영을 했는데, 콘티를 처음 보니까 너무 장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게 원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한 거잖아.

오프닝에 장중한 음악이 나오면서 노인이 거대한 게를 잡아 배에 매가지고 오는 장면이 너무 무겁게 보일 것 같더라구. 뭔가 반전이 있어야겠다 싶어 나름대로 고민을 좀 했지.

‘웬만해선…’할 때 노구 할아범이 쓰던 표현을 한번 넣어보면 어떨까 싶었어. 그 영감 어투로 마지막 멘트를 한번 날려봤지. 그런데 촬영 스태프들이 난리가 난 거야. 좀 보태서 얘기하자면 깔깔 웃다가 배 위에서 떨어진 친구도 있었을 정도였다니까. 아 그럼 반전이 제대로 됐구나 싶었지.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흐뭇했어.

그때 촬영을 어느 세트장 같은 데서 한 걸로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니야. 제주도까지 가서 바다 위에 배 띄어놓고 했다니까. 내가 탄 배는 모터보트로 끌고 촬영팀은 큰 배 위에서 카메라 고정시켜놓고 찍고 그랬어.

말도 말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노인이 지쳐서 배에 누워서 오는 장면을 찍는데 글쎄 마침 비가 오는 거야. 바다 위에서, 그것도 나룻배 위에서 혼자 비 맞아봤어? 그 기분 모른다니까. 정말 처량하더구먼. 바다 위에서 배 타고 찍으니 NG는 또 얼마나 많이 나는지, 정말 쉽지가 않더라구.

하여튼 고생은 많이 했지만 반응이 좋으니 천만다행이야. 우리 마누라도 아주 좋아하더라구. 무뚝뚝한 영감이 사람들을 웃기니 신기한가봐.

‘게 맛’ 멘트에 촬영 스태프들 포복절도 숨겨진 ‘끼’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변신을 했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나름대로 굳어진 자기 이미지가 있지만 연기자는 거기서 만족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 자기 속에 있는 끼를 늙어 죽을 때까지 끄집어내야지.

임동진씨 같은 경우도 요즘 드라마에서 코믹 연기를 하잖아. 한 배우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시트콤일수록 연출하고 연기자하고 잘 맞아떨어져야 해. 어느 한쪽이 기울면 절름발이가 되는 거지. 시트콤이니까 애드리브가 중요하지 않느냐 그러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대본에 의한 약속이야.

대본 안에서의 즉흥연기, 순발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얘기지. 요게 하면 할수록 참 매력이 있는 것 같애. 시트콤이라는 게 말이야, 뭐라고 할까, 금광에서 광맥을 찾아 금을 캐는 맛이라고 해야 되나.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을 내가 연기를 해서 웃음이 유발될 때 그 맛이 아주 괜찮아.

사실 슬픈 표정 짓고 울고 하는 건 드라마 흐름을 타고 감정을 그쪽으로 몰고 가면 되니까 그리 어렵지 않은데, 웃음은 참 그런 면에서 어려워. 딱 반 호흡 차이로 웃음이 나오고 안 나오고 한단 말이야. 한 호흡 쉬고 상대방 대사를 받는 거하고, 반 호흡 쉬고 그렇게 하는 거하고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구. ‘너 밥 먹었냐’라고 물었을 때 바로 ‘먹었어’ 하는 거하고, 허리 한번 뒤로 젖히고 반 호흡 쉬었다가 ‘먹었어’ 하는 거하고는 그 맛이 천지 차이지.

요즘 어린 연기자들 보면 놀라겠어. 경험도 별로 없는 초자들이 그 맛을 안단 말이야. 더구나 그 친구들은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댄스’까지 되더라구. 좀 설익기는 하지만 그 나이 때의 우리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 단지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너무 앞서 가려고만 하지 말고 참을성 있게 내실을 다지면서 차근차근히 하라는 거지.

그렇게 하면 앞으로 우리보다 더 내용이 풍부한 배우가 될 거예요. 가끔씩 집사람이 어린 친구들한테 잘하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해. 솔직히 집에서는 거의 말을 안 하는 편이거든. 시트콤이나 CF에서의 모습하고 집에서 생활할 때의 날 비교하면 정말 별개의 인물이지. 성격이 좀 과묵하다고 그래야 되나. 말주변이 없기도 하지만 말을 많이 하는 걸 별로 싫어하는 편이야.

자료제공:팟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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